①노래, 무용, 연극과 동침 `문학이 바람나다`

기사입력 2009.11.27 1:34 PM
①노래, 무용, 연극과 동침 `문학이 바람나다`

[현장중계] 제 7회 문학나눔콘서트 ‘소설읽기의 방식’

문학이 텍스트를 박차고 나왔다. 노래, 무용, 연극 등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한 작품에 독자들은 열광했고, 작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와 사이버문학광장(http://www.munjang.or.kr)이 주관하는 문학나눔콘서트, 제 7회 ‘소설읽기의 방식’은 소리와 몸짓이 한데 어우러진 자리였다.

20일 저녁 7시 대학로 SH클럽.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 5인방(고은주, 박민규, 정이현, 천명관, 한강)과 250여명의 독자가 벌인 흥겨운 ‘난장(亂場)’에 당신을 초대한다.

`꽃분홍 셔츠` 박민규가 열창한 블루스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나른하고 편안한 노래로 포문을 연 행사는, 사회를 맡은 소설가 고은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객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철제 계단에까지 걸터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첫 번째 공연은 소설가 박민규와 연극배우 박상종의 합동 낭독.

박민규는 레이스 달린 꽃분홍색 셔츠를 입고, 트레이드마크인 고글을 끼고 나타났다. 최신작 <핑퐁>(창비. 2006) 표지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듯한 모습이었다. 낭독작 역시 <핑퐁>.

핑, 퐁, 핑, 퐁. 탁구공이 오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박상종이 낭독을 시작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전철을 탑니다. 누구나 집을 나서면 전철을 타는 법이지만 저는 좀 다릅니다. 저는 내리지 않습니다.”

`으으음...`

중량감 있는 목소리가 잠식한 실내를 박민규의 낮은 허밍이 비집고 들어왔다.

`라라라...`

뜻을 알 수 없는 흥얼거림은 이내 책 속 문장을 가사로 한 노래로 바뀌었다.

“당신은 오늘 학교로 간다~” “당신은 오늘 출근을 한다~”

술 취한 아저씨의 고성방가처럼 거칠고 째진 목소리, 박자와 음정 모두 제멋대로였지만, 노래를 부르는 박민규도 듣는 독자도 모두 심취했다.

뜨거운 박수갈채와 함께 공연이 끝나고, 박민규는 “도중에 고글에 김이 서려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며 “중간부터는 책 속 내용이 아닌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고 시인했다. 작가의 솔직한 고백에 독자는 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박상종은 “박민규가 이렇게 블루스를 잘 부를지 몰랐다”며 “가수 프로모션을 준비해야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무용, 인형극, 에니메이션...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한 소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작가는 한강이었다.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2002)을 낭독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단정하고 정갈했다. 앞선 무대로 들뜬 분위기가 차분히 정리되었다.

낭독이 끝나고 암전, 작품을 토대로 안무한 무용 공연(무용가 김세용, 김준희)이 이어졌다.

음악이 없이 무용가의 몸사위로만 시작된 공연. 바닥을 스치는 옷자락 소리만이 유일한 효과음이었다. 실루엣만이 간신히 보이는 어두운 조명이 보는 이의 가슴을 옥죄게 만들었다.

공연을 지켜본 한강은 감정이 복받쳐 오른 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움 속에 숨겨진 뜨거운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 무용이 이를 그대로 표현해냈다”며 “사람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데에 가슴이 뻐근해 온다”고 감상을 밝혔다.

사회를 맡은 소설가 고은주도 행사에 직접 참여했다. 한강의 낭독이 ‘정적’이었다면 고은주의 낭독은 ‘극적’. 작가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은 글이나 목소리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그녀가 읽은 <칵테일 슈가>(문이당. 2004)는 인형극(예술무대 산)으로 재구성됐다. 마네킹과 혼연일체 돼,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에 작가와 독자 모두 숨을 죽였다.

경쾌하고 발랄한 발걸음으로 등장한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06)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책 속 일러스트를 토대로 만든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배경으로 흘러나왔다.

정이현은 “관객의 한사람으로서 앉아서 지켜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나도 무용이나 연극을 할 걸 그랬다”고 아쉬움을 표하다가, “그러게, 회의할 때 나오셨어야죠”라는 사회자의 핀잔을 받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 직접 연기한, 작가 천명관

천명관은 가장 적극적으로 공연에 동참한 작가였다. 그는 단편 ‘유쾌한 하녀 말리사’를 각색한 연극(연극배우 이영숙, 이상옥)에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공연 전 짧게 내용을 설명하는 작가를 두고, 사회자는 ‘친철한 명관씨’라 칭했다.

(무대는 독일. 남자 주인공은 작가. 취재차 다녀온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테이블에 놓인 부인의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그가 편지를 읽으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시작은 순탄치 못했다. 미처 마이크를 준비하지 못한 여배우로 인해, 공연은 잠시 맥이 끊겼다. 불평을 늘어놓는 이는 없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에 도리어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격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천명관이 무대에 재등장했다. 그의 연기는 시종일관 어설펐다. 와인을 마시다가 놀라서 멈칫하는 장면에선 실소가 새어나왔고, 남자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비극적 결말에서도 관객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공연 후, 천명관은 “새벽 염불만 없으면 중노릇도 할 만하다고, 대사만 없으면 연기도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에 도전했다”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배우가 살아있는 호흡이 불어넣은 덕에 앙상한 작품이 살아난 것 같다는 감회도 덧붙였다.

준비된 공연이 모두 끝나고, 콘서트는 이미 예정시간 1시간 반을 훌쩍 넘겼지만 객석엔 미동조차 없었다. 독자들은 이어질 ‘관객과의 대화’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TV리포트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