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아버지` 같았던 박치기왕 故김일

기사입력 2009.11.27 1:34 PM
`우리들 아버지` 같았던 박치기왕 故김일

우리시대 가장은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늘 쓸쓸한 존재다.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친 후에도 한 처자의 남편이자 어린 여식의 아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마음의 부채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그래서 가장은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도 늘 가족에게 미안한 객식구로 남는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프로레슬링의 역사를 새롭게 쓴 `박치기왕` 故 김일. 그에게도 가족은 그렇듯 미안함과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지극 정성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 먼저 눈을 감은 아내, 군대에서 의문사한 막내아들, 후배 프로레슬러에게 시집을 보낸 큰딸. 이들과 한 밥상에 모여 정겨운 저녁시간을 맞이한 기억이 그에겐 전무하다.

여느 평범한 가장처럼 김일은 가정에 충실할 수 없었다. 그가 일본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무렵, 그의 아내 박금례 씨는 단촐한 살림과 세간을 꾸리며 남편을 응원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었지만 싫은 내색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알뜰히 대접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너른 품으로 남편을 배려한 속 깊은 아내였다.

레슬링을 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김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비로소 그와 그의 아내는 함께 했다. 그러나 이미 아내는 백혈병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고, 행복도 잠시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 기환 씨가 아비보다 먼저 죽었을 때에도 김일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 있었다. 대학 재학 중에 입영을 한 막내아들은 실종 10여 일 만에 야산에서 발견됐다. 소식을 접하고 한국으로 달려 온 김일은 아들의 주검 앞에서 심한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음 씀씀이가 깊고 착실한 아들 이였기 때문에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은 더욱 애절했다.

집에 있는 동안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 아버지, 김일. 그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그를 잘 따르던 막내아들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 그리고 김일 또한 세상에 없다.

9일 저녁 7시 30분 KBS 1TV `피플세상속으로`는 지난달 26일 고인이 된 김일 선수의 지난시절과 전남 고흥군 장지까지 함께 한 이왕표 선수의 `30년 사제의 이별`을 되짚는다.

이왕표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김일 선수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링 위에서 악당을 무찌르는 ‘프로레슬러’의 꿈을 키워왔다. 열아홉 살 때, 김일 도장의 1기생이 됐고, 혹독한 훈련을 거쳐 3차례 세계 챔피언이 됐다. 그에게 김일 선수는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혹독한 훈련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제자들이 맞는 경기를 못 볼 정도로 정이 넘치는 분이셨다. 경기가 끝나 스승의 ‘고생했다’는 한 마디면 눈물이 날 정도로 최고의 찬사였다. 그런 스승을 보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다시 일어나 ‘이놈’ 하고 호령하실 것만 같다."

키가 180cm가 넘는 호랑이 같은 체격의 김일은 기술만 가르친 게 아니었다. "인간적인 예의를 가르쳤고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쳤다."

`박치기` 한방에 거구들을 나자빠지게 했던 한 시대의 영웅이었던 김일. 태어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사라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런 가족과 애제자를 두고 아주 먼 길을 나섰다. 먹고 사는 게 고난이었던 국민들에게 김일은 영웅이요, 꿈이었다. 또한 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더 많은 우리시대 가장이기도 했다.

[TV리포트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