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의 위력` 지옥과 다름없었던 시절

기사입력 2009.11.27 1:34 PM
`독감의 위력` 지옥과 다름없었던 시절
전쟁, 기아, 화산폭발, 지진...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위협도 하나의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를 넘어설 수 없었다. 열 달 동안 전 세계 인구의 4천만 명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질병 ‘독감’.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고 쉽게 나을 수 있다고 믿는 독감이 인류를 공포에 빠뜨린 시기가 존재했다. 1918년 전 세계는 알 수 없는 독감 바이러스로 인해 말 그대로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9일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된 ‘죽음을 부르는 바이러스, 독감’은 독감으로 온 인류가 공포에 떨었던 1918년 한 해를 조명했다.

1918년은 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었다. 당시 인류는 과학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장티푸스나 천연두 같은 전염병은 예방과 치료가 충분했고 인류가 고치지 못할 병은 없어 보였다.

유럽의 한적한 관광 도시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에 독감이 찾아왔다. 일명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는 독감의 시작이었다. 이 독감은 전염성이 매우 강했고 다른 독감과 달랐다. 뿐만 아니라 독감의 일차 피해자인 노인들과 어린이들은 비켜 가는 듯 했다.

대신 젊고 건강한 성인들이 독감의 피해자가 되었다. 두 달 후,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이 독감에 걸렸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비롯하여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도 이 질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독감은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가 독감에 걸려 사망했다. 전투력은 심각하게 저하되었고 작전을 연기해야 했다. 독감은 복수의 화신처럼 사납게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 독감은 전염성도 강했을뿐더러 치명적인 살인자였다. 감염자의 80퍼센트는 2명 중 1명이 심각한 증세로 사망했다.

그해 8월 미국에 상륙한 독감은 전쟁을 준비하던 전국 곳곳의 군사 기지들을 공격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9월에만 1만 2000명의 미국인이 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독감이 잠잠해지기까지 5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죽었다.

당시 미국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장례식에 쓸 관은 언제나 모자랐고 얼굴을 가린 마스크는 당시 아이들이 걸고 다녔던 부적 목걸이처럼 아무 쓸모가 없었다. 죽음은 남녀노소, 계급,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유언비어가 떠돌았고 거리 곳곳에 시체는 쌓여갔다. 희망이라곤 없어 보였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독감 연구에 몰두했지만 가정만 무수할 뿐 원인도 치료법도 밝혀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독감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당시 독감으로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독감이 사라지면서 사람들도 독감을 잊었다.

오늘날에도 전쟁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독감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18년의 대재앙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다만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만 남겼을 뿐이다.

현재 과학자들 중에는 이 독감을 끈질기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당시 죽은 시체의 폐에서 독감조직을 찾아냈고 유전자 염기 서열을 분석했다. 하지만 독감의 완전한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고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채 의문만 남기고 사라진 독감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언제 어디서 다시 이 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위협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TV리포트 진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