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③] 궁정동에 불려간 여자연예인은 누구, 수고료는 얼마나 받았을까?

기사입력 2012.02.22 12:15 AM
[빛과 그림자③] 궁정동에 불려간 여자연예인은 누구, 수고료는 얼마나 받았을까?

[TV리포트 윤상길의 OLD & NEW] MBC 월화극 ‘빛과 그림자’.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궁정동’ 때문에 또 사달이 났다. 드라마에서 ‘궁정동의 여인’은 아직까지는 가수 유채영(손담비)이 유일하다. 이정혜(남상미)는 은총(?)을 거부했지만, 유채영은 은총을 자청했다. 그런데 은총을 거부한 이정혜가 ‘사랑’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21일 방송에서다.

반면 ‘궁정동 여인’이 된 유채영은 막강한 힘을 얻었다. 청와대 장철환(전광렬)실장과 전략적 동맹을 맺을 정도다. 전 소속사 노상택(안길강)대표의 윽박지름에 콧방귀를 뀌고, 칠공자 멤버로 자신을 괴롭히던 스폰서 고실장을 무릎 꿇리고 뺨까지 후려친다. 바로 ‘궁정동’의 위력이다.

궁정동의 산증인에 가수 심수봉이 있다. 그는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안가(安家)에 불려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히트곡 ‘그때 그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에 의해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심수봉이 최근 KBS2 ‘승승장구’에 출연해 “10·26 사태 이후 누군가에 의해 어느 정신병원에 감금당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 달 가까이 정신병원에서 지냈고 아무리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말해도 그들은 나를 가두고 약물 주사를 놨다”고 덧붙였다. 궁정동이란 이처럼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어놓은 곳이기도 했다.

2005년에 개봉된 영화 ‘그때 그사람들’(임상수 감독). 여기에서도 ‘궁정동 여인’은 흥미롭게 묘사됐다. 극중 윤여정은 유명 탤런트의 어머니로 출연한다. 그 딸이 궁정동에 다녀왔는데, 생각만큼 대접이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섰다. 녹음대본에서 간추린 윤여정의 대사다.

“새벽에 언뜻 깨보니(대통령이)자기 몸을 쓰다듬고 계시더래요. ‘곱다. 정말 곱다’ 이러시면서. 한없이 계속. 온몸을. 글쎄 쟤(딸)가 배시시 웃으니까 그때서야 멋쩍게 옷을 주섬주섬 챙기시는데. 아, 지(딸)가 그냥 자빠져 있을 수 있겠어요. 어르신(대통령) 옷 먼저 입으시라고 쟤는 벗은 채로 수발을 들었대요. 벗은 채로. 그러다가 결국 어르신이 쟤를 한번 다시 품어주시고.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 예~에. 그 연세에! 쟤를 꼭 품으신 채로 그러셨대요. ‘꼭 다시 놀러오라’고. 제가 청와대고 어디고 쫓아다닌 건 죄송합니다.”

3류 성애(性愛)소설에서나 읽음직한 질펀한 놀음이 궁정동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도대체 ‘궁정동 안가’란 곳은 어떤 곳이었으며, 여기에 숱한 여자 연예인들이 왜 불려 다닌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게는 어떤 반대급부가 주어졌을까.

서울 종로구 궁정동은 북악산을 바라보며 청와대와 경복궁 사이 왼쪽에 자리한 동네. 통칭 ‘궁정동 안가’는 궁정동에 있던 중앙정보부 관리의 별도 건물을 말한다. 여기에는 중앙정보부 궁정동 본관 및 부장 집무실, 그리고 대통령이 사용하는 구관의 가동~다동(한옥)이 있었다. 구관에서는 주로 대통령의 크고 작은 저녁 연회가 열렸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가 2005년에 펴낸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궁정동 안가 술자리는 대통령 혼자 즐기는 소행사와 10·26 그날 밤처럼 경호실장, 중정부장 등 3, 4명의 최측근이 함께하는 대행사로 나눠졌다고 한다. 대행사에서 맘에 드는 여성을 ‘뽑아’ 대통령이 따로 즐기는 일을 소행사라고 불렀다.

대행사는 월 2회, 소행사는 월 8회 정도 치러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찾아오는 빈도가 높았고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상대하는 여자로는 영화배우와 탤런트, 연극배우, 모델 등 연예계 종사자가 가장 많았다. 김재규 부장이 안동일 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숫자만도 200명이 넘는다.

‘그 많은 연예인을 누가 다 모았을까’. 박완서 소설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그 많은 연예인을 모은 현대판 채홍사(採紅使)는 당시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 ‘빛과 그림자’에서는 청와대 장철환 실장과 차수혁(이필모) 비서관이 주선한 것으로 그려졌으나 실제로는 중앙정보부가 그 일을 맡았다.

박선호는 말이 의전과장이지 궁정동 안가를 관리하고 소·대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에게 쓸 만한 여자를 찾아내 바치는 게 주임무였다. 박선호 과장은 연예계와 서울 장충동 요정의 마담 등 밤 세계 실력자들로부터 여인들을 소개받았다. 그는 여인들을 데려오고 행사 후 귀가시키는 일을 도맡았다. 물론 여인들에 대한 보안 교육도 그의 몫이었다.

안동일 변호사의 회고에 따르면 박선호 과장은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할 일이 못 된다”라며 몇 번이나 김재규 부장에게 사표를 냈지만, “자네가 없으면 궁정동 일을 누가 맡느냐” 면서 김 부장이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선호 과장은 10.26 사태와 관련해 1980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무튼 궁정동에 여인들이 불려간 것은 분명하고, 그들이 궁정동에 놀러가지 않은 이상 대가는 있었다. 그 대가는 현금으로 얼마나 됐을까. 10.26 당시 심수봉과 함께 술자리에 들어갔던 다른 한명의 여인은 CF모델로 활동했던 한양대 연극영화과 학생이었던 신재순이다.

신재순은 법정에서 10.26 사태 당시 2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당시의 20만원은 지금 얼마나 될까. ‘서울시 통계정보’를 참고하면 당시 극장 입장료는 400원, 자장면 한 그릇 값이 150원이었다. 20만원이면 단번에 500명의 극장 입장료가 되는 금액이다.

당시 군사법정에서의 심문과 변호인 접견록에 따르면 중앙정보부에서 대통령의 술자리 여자들에게 주는 ‘화대’는 지금 돈 가치로 쳐서 보통 100만 원 정도였고 유명세를 계산해 더 주는 경우는 200만 원이었다.

하지만 돈 가치만의 문제는 아니었던듯하다. 그 이유는 권력의 힘도 작용했겠지만 신인 연예인이나, 시중의 유명 마담들이 거느리는 화류계 여인 중엔 대통령의 술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 지원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런 지원자들을 골라 보내주는 마담이 장충동 요정의 ‘김 마담’이었다. 연예계에서 유명해지기 전인 20대 초의 나이 어린 신참들이 김 마담으로부터 은밀한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쾌히 응낙했다. 이들은 궁정동에 갔다 온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것으로 연예계의 정상에 한 발 다가 간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궁정동은 그런 곳이었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고위층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예계 지망생이 0순위 자리로 알았던, 지금의 ‘궁정동 안가’는 어떤 모습일까.

‘궁정동 안가’는 1993년 7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헐어버린 뒤 ‘무궁화동산’을 조성했다. “밀실정치의 상징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면서…. 무궁화동산 안에는 정(井)자 모양의 우물이 있다. 마치 ‘궁정동(宮井洞)’을 의미하듯이.

사진=TV리포트 DB

윤상길 편집위원 yoonsk4u@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