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노트-8탄] 장태유PD "올인, 여인천하 조연출 놓고 가위바위보"

기사입력 2012.10.25 1:4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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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이우인 기자] 장태유 PD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인공은 그해 연기대상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박신양, 문근영, 한석규는 모두 장 PD의 드라마를 통해 연기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본인 또한 지난 연말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이하 '뿌나')로 올해 각종 연출상을 휩쓸었다.



장태유를 모르는 드라마 시청자가 없을 정도로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스타 PD다. 작품을 대부분 성공시켰고, 작품을 통해 여론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 가도만 달렸을 것 같은 그에게도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만의 연출 스토리를 가감 없이 옮긴다.



◆ 돈 버는 일에 관심 많았던 학창시절 



서울대 시각디자인과 출신 드라마 PD. 내 꿈은 CF 감독이었다. CF 감독이 되기 위해 영상을 열심히 연구했다. 학교를 다니며 취업의 특전이 있는 광고대전에도 많이 참여했다. 졸업작품은 15초짜리 영상 광고였다. 창피한 일이지만, 광고대전에서 상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받았다면 지금쯤 광고쟁이가 돼 있지 않을까. 



군 제대 후 휴학을 하고 잠시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같은 과 친구가 내게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CD롬이라는 매체가 최초로 생겼을 때였다. 야후와 라이코스 같은 인터넷에서 정보와 그림을 다운받아 담은 CD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당시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 친구가 대표, 나는 이사였다. 1년 정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벌지 못해 그만뒀다.



그 친구는 그때 만든 회사로 성공했다. 지금은 코스닥에도 상장된 기업이다. 30대에 재벌이 된 100억 원대 자산가다. 그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에서 살고, 가장 비싼 차를 탄다. 내가 그 사업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그 친구처럼 벤츠를 타고 타워팰리스 같은 곳에 살지도. 친구를 볼 때마다 부러워서 울컥한다. 그래서 자주 안 만난다. 



당시의 나는 전(錢)을 만지는 게 소원이었다. 원 없이 나이키 운동화, 리바이스 청바지, 게스 청바지를 사고 싶었다. 하지만 돈 벌기가 어려웠다. 과외를 하면 한 달을 못 가고 잘렸다. 다른 친구들은 과외 해서 차도 사는데, 나는 한 달에 30만 원도 못 벌었다. 채소장수가 돼서 손수레를 끌며 배추를 팔았다. 공장도 다녔다. 사회를 알기 위해 위장취업도 해봤다. 사업으로 잠깐 많은 돈을 벌었다가 단속을 맞아 하루아침에 망하기도 했다. 



◆ 형 권유로 PD 도전한 미대생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영어학원을 다녔다. 1년에 1명만 뽑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으려는 목적이었다. 이모가 1970년대에 이 장학금을 받아 세계적인 기업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영어는 지금도 외국인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당연히 받을 줄 알았지만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놓친 후 '로터리 장학금'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떨어졌다. IMF로 우리나라 경제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였다. 그 전까지 광고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CF 조감독 생활도 하며 경력을 쌓았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일기획 금강기획 오리콤 같은 광고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을 뽑기는커녕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다. 차선책이었던 유학, 하지만 장학금마저 수포로 돌아가며 길을 잃고 말았다. 



1998년 가을학기 졸업을 앞두고 피가 말랐다. 그러던 중 SBS 예능 PD인 형(장혁재)의 권유로 SBS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6월 시험인데 3월에 이야기해줬다. 이번에는 연습 삼아 보고, 내년 시험이 오기 전에 어쩌면 광고회사 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고 시험에 응시했다. 3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 필기시험 문턱이 낮아 붙었다. 실기시험은 자신이 있었다. 또래보다 인생을 많이 산 내가 못할 일은 없었다. 



필기시험에 통과한 200명 중 실기시험에서 붙은 지원자는 6명. 그중엔 '유령'의 김형식 형도 있다. 힘들기로 소문난 드라마 PD에 지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와 형식 형은 드라마 세계에 함께 발을 들이게 됐다. 나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CF를 만들 생각이었다. 끝까지 봐야 제품을 알 수 있는 CF를 좋아했다. 예능, 교양, 드라마 중 내게 가장 잘 맞는 장르는 드라마였다. 





◆ 순탄치 않았던 조연출 생활



드라마 조연출의 시작은 '토마토'였다. 이 작품을 하며 충격을 받았다. 군대보다 더 힘들었다. 사람을 바퀴벌레 취급하는 곳이 드라마 촬영장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다음에 한 작품이 서영명 작가의 '맛을 보여 드립니다'. 조연출로 참여한 지 3개월 만에 잘리고 말았다. 촬영이 급해지면서 나보다 경력이 더 높은 선배 조연출과 교체됐다. 그리고 아침 드라마로 넘어갔다. 상처받은 나를 치유해준 사람이 당시 연출이었던 김영섭 SBS 드라마 국장이다. 



고흥식 선배의 '해뜨는 집'을 조연출한 뒤로 아침, 일일, 주말 등 다양한 장르에서 조연출로 활동했다. 미니시리즈 조연출 첫 작품은 고(故) 김재형 감독의 '여인천하'. 새천년이 될 때여서 큰 작품을 하고 싶었다. 마침 '올인'과 '여인천하'의 기회가 왔다. 현대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기와 가위바위보에 지는 바람에 '여인천하'를 하게 됐다. 그 동기가 형식 형이다. 그때부터 운명이 엇갈렸다. 



'올인'은 24부작이고, '여인천하'는 50부작이었다. '그래 조금 길 뿐이다'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여인천하'의 시청률이 50%를 넘으면서 152부로 종영됐다. 방송만 1년 반을 했다. 나는 2년을 '여인천하'에 고스란히 바친 셈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황폐해졌다. 내가 '여인천하'를 하는 동안 아이가 태어났다. 집에 너무 못 들어가서 와이프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 뒤에 한 작품이 주진모 신민아 주연의 '때려'였다. 조연출이지만 연출처럼 일을 도맡아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녀를 보라'라는 2부작 드라마도 만들었다. 시청자가 만들어가는 드라마라는 콘셉트로, 시청자 의견을 받아 엔딩을 바꾸는 독특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려'도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졌다. '때려'는 많은 사람을 변화시켜준 힐링 드라마였다.  



◆ 상처 많았던 좌충우돌 입봉기 



사람들은 내가 연출자로 승승장구 한 줄 알지만, 상처가 매우 많았다. 내가 공동연출자로 기획에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 '불량주부'였다. 하지만 연출자가 몇 차례 변동이 있고 나서 최종적으로 유인식 선배가 연출을 맡게 됐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침 드라마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하지만 나는 B팀(야외촬영) 연출이라도 좋다며 아침 드라마를 버리고 '불량주부'를 선택했다.



'불량주부'는 내가 최초로 선택한 기획안이었기 때문.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해서 잘 안 될 경우, '그것봐 네가 잘못 본 거야'라고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부터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내가 보는 포인트로 만들었는데도 작품이 안 되면 인정하겠는데, 그것을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서 잘 안 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메인 연출을 맡은 첫 작품은 '101번째 프러포즈'였다. 이 작품을 하다 잘릴 뻔하기도 하고, 1회 조기종영되는 굴욕도 맛봤다. 다시 아침 드라마로 배정된 후 '친정엄마'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 만난 작품이 '쩐의 전쟁'이었다. 송승헌이 나의 구세주였다. 어떤 드라마의 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5~6월 라인업이 펑크가 난 것. 드라마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태프들과 급하게 준비한 작품이지만, 평균 시청률이 30%가 넘으며 그해 SBS의 효자 드라마가 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을 믿게 됐다. 



'쩐의 전쟁' 이후 나는 기고만장해졌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 해외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에 호주로 장소 헌팅을 다녔다. 한국판 '태양은 가득히'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2부 예산만 10억 원. 당시는 2부를 찍는 데 4억 원을 넘기면 말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결국 해보지도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연말까지 사무실에서 놀았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허웅 국장이 준 책이 '바람의 화원'이다. 



◆ 드라마로 세상 바꿀 때가 가장 뿌듯



'바람의 화원'을 받은 후 내 반응은 '읽어는 볼게요. 하지만 사극은 싫어요'였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은 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했다. 이는 그림을 그린 자만이 알 수 있는 감동이었다. 그림의 해석, 화가의 머릿속을 그려내는 심리묘사가 탁월했다. '이걸 내가 안 하면 누가 하지?'라는 생각. 올해 내가 하지 않으면 이 기획안은 사장되고 말 거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1년 동안 공을 들여서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림과 현장을 맞추기 위해 민속촌에 그림에 맞는 세트를 만들었다. 사전준비를 많이 필요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고 싶다 보니 막판에 복합적인 문제를 낳았다. 내 인생에 이처럼 심한 난장판은 없었다. 당시의 일로 나는 또다시 아침 드라마로 가라는 명을 받았다.



2009년에는 회사에서 허튼짓을 하면서 보냈다. 2010년 2월에는 전세금을 빼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해외 연수를 떠났다. 돈을 펑펑 쓰며 미국의 중북부만 빼고 전부 돌았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뒤 만난 작품이 '뿌나'였다. 한석규가 캐스팅된 후 줄줄이 사탕으로 장혁과 윤제문 신세경이 캐스팅됐다. 원작 작가 배우 연출 네 박자가 맞았다. '뿌나'는 기연(奇緣)이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쩐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금융감독원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그동안 사채에 관련된 연간 이율에 대한 부분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 '바람의 화원'이 끝난 뒤에는 전국적으로 시들해가던 동양화에 대한 열기가 생겼다. 동양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늘고, 리움 미술관에서는 동양화 특별전도 열렸다. '뿌나'로는 우리나라 한글에 대한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했다는 공으로 한글사랑문화연대에서 한글지킴이 상을 줬다. 내가 만든 작품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정말 뿌듯하다.





◆ 못다 한 이야기...



- 연출작 시청률 순위: '쩐의 전쟁'이 제일 높았다. 평균 시청률이 30%를 넘었다. 이어 25% 정도의 시청률을 낸 '불량주부', '뿌나', '바람의 화원' 순. 



- 최고의 작품: '뿌나'. 다시는 이런 작품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 아쉬운 작품: 애증의 작품인 '101번째 프러포즈'. 신앙심을 두텁게 해준 작품이다. 기도를 많이 하게 됐다. 



- 드라마 제작 단계 중 가장 어려운 단계: 정신적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다. 정신적으로는 좋은 작품을 찾아내서 기획할 때. 물리적으로는 방송 나가고 6회 이후. 이때는 몸과 마음, 머리 다 힘들다.



- 궁합이 잘 맞는 작가: 4명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굳이 이야기하면 김영현 박상연 작가.



- 앞으로 호흡을 맞추고 싶은 작가: 박연선, 김지우, 윤선주 작가. 멜로를 한다면 이경희 작가. 이밖에도 우리나라에는 좋은 작가가 많다. 



- 같이 호흡을 맞춘 최고의 배우: 같이 일한 배우 중에는 한석규가 최고. 그의 연기가 자기 절제에서 비롯돼서 나온다는 사실을 '뿌나' 때 확인했다. 박신양도 그에 못지않은 좋은 배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폭발적인 연기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박신양 한석규가 동시에 나오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 우려했지만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배우: 문채원. '바람의 화원' 전에는 제대로 된 드라마를 해본 적이 없는 배우였다. 캐스팅 당시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문채원 한 사람을 가지고도 드라마가 기획될 정도가 됐다. 문채원을 보면 마치 내가 발굴한 배우 같아 뿌듯하다. 



송중기도 '뿌나'에서 아역으로 캐스팅할 때 많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송중기의 연기력과 성공 의지를 '성균관 스캔들'에서 이미 봤다. 송중기가 '뿌나'로 연기력이 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 잘했는데 '뿌나'에서 드러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 발굴한 신인: 발굴한 신인보다는 드라마 길을 열어준 배우는 꽤 있다. 류승룡은 '바람의 화원' 이전에는 연극과 영화를 주로 했다. 이문식은 '101번째 프러포즈'를 통해 처음으로 주인공을 했다. 윤제문 또한 '뿌나'를 하기 전에는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다. 신세경도 '뿌나' 전에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TV 경력의 전부였다. 문채원과 같은 케이스.



- 다시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 박신양 한석규 문근영. 



-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배우: 문근영. '바람의 화원'을 할 때 연출인데도 대본 문제로 막판에 현장을 자주 비웠다. 그 친구가 최선을 다한 것에 비해 연출자로서 몫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미안하다. 가슴에 남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다. 



-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배우: 현빈, 이민호와 드라마를, 하정우 황정민 김명민과 영화를 작업하고 싶다. 여배우는 한효주 공효진. 



-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연출자: 오종록 선배. 연출자의 눈과 장악력이 있다. 카리스마와 안목이 균형 있게 배분되는 연출자. 정말로 훌륭한 연출자라고 생각한다.



- 작품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세상에서 잊혀가는 소중한 것을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 연출자로 꼭 해보고 싶은 시도: 모두 안 된다고 하지만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SF 판타지 액션 장르를 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손을 못 대는 분야다. 미국의 '두 얼굴의 사나이' '600만불의 사나이' '기동 순찰대' 처럼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른이 돼서 '그거 봤느냐?' 할 수 있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 



- 연출은 언제까지: 예순 정도. 예순이 넘어가면 후배들을 도와주는 일 혹은 정말로 다른 일을 할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열심히 해서 작은 사업을 하고 싶다. 그동안 작가가 써준 대본으로 2차 가공을 하는 연출자로 살았으니, 그림이든 글이든 1차적인 창작을 하는 인생을 살 생각이다.  





장태유 PD는? 1972년생 /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졸업/ 1998년 SBS 공채 7기 입사 / 대표작 - 불량주부, 101번째 프러포즈,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 / 수상경력 - 제6회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연출상, 제4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제38회 한국방송대상 대상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연예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23일 개막…명작의 감동 되살아난다 [TV리포트=이세빈 인턴기자]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23일 개막한다. ‘여명의 눈동자’는 지난 1991년 방영 당시 많은 사랑을 받은 동명의 드라마를 무대로 옮긴 창작 뮤지컬. 지난 1943년 겨울부터 한국 전쟁 직후 겨울까지 격변기 10년의 세월을 겪은 세 남녀의 지난한 삶을 통해 가슴 아픈 역사를 담아냈다. 이번 공연의 음악은 대극장의 규모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재편성해 넘버를 더욱 섬세하게 편곡했다. 41명의 앙상블 배우들의 합창 역시 재편곡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한국 전통 악기와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조화를 이루어 고유의 한의 정서를 담아낸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무대가 대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철조망 덩굴, 녹슨 난간 등 작품의 서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세트를 통해 장대한 스케일의 역사적 배경을 그려낸다. 무대 세트와 영상의 조화는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상을 더욱 견고하게 구현해 드라마틱한 무대를 완성시킬 전망이다.중국 남경 부대의 정신대(위안부)로 끌려가 대치와 하림을 만나 질곡의 세월을 보내는 윤여옥 역으로는 배우 김지현, 최우리, 박정아가 열연한다. 일본군으로 징용된 남경 부대에서 여옥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최대치 역은 가수 테이와 배우 온주완, 오창석이 맡는다.동경제대 의학부 출신의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여옥을 만나 그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는 장하림 역에는 배우 마이클리와 이경수가, 대치와 학도병으로 함께 징병되어 끝까지 함께하며 우정을 지키는 권동진 역에는 배우 정의제와 그룹 빅스의 한상혁이 캐스팅됐다.이세빈 인턴기자 tpqls0525@tvreport.co.kr / 사진=쇼온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