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노트-9탄] 김형식PD "의학드라마 시청자는 연애장르로 알아"

기사입력 2012.10.30 9: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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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이우인 기자] 김형식 PD의 드라마는 '미드(미국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장르적인 색채가 뚜렷하고 완성도가 높다. DVD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부른다. 일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자세는 그만의 치밀한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고급 능력이다. 



그러나 정작 김 PD는 단막극이 가진 따뜻함에 목말라 있다. 연출 스타일이 차갑다는 평에 그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형식 PD가 만들고자 하는 드라마는 어떤 그림일까. 그만의 연출 스토리를 가감 없이 옮긴다.



◆ 고교시절 나쁜 짓 많이했어도 공부는 잘해



드라마를 만드는 PD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학창시절. 검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정의로운 척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고등학생 때는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친구들을 선동해서 놀고, 싫어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더 나쁜 건 그렇게 놀고 반항하면서도 공부를 잘했다. 그걸 이용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다. 



서울대 법대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첫 대입에 실패했다. 재수했지만 법대에 들어갈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눈치작전으로 붙은 학과가 신문학과였다. 부전공으로 법학과를 선택해 전공과목은 팽개치고 사법고시 공부를 했다. 이때까지는 고시에서 떨어지면 기자를 할 거로 생각했다. 이쪽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몇 년 후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있을 때 처음으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시 공부를 계속할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좋아한 영화감독이 될지를. 대학교 선배 중 박홍균 이재규 선배처럼 드라마 PD가 된 사람이 꽤 있었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내겐 MBC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다. 특히 황인뢰 PD와 안판석 PD의 작품을 좋아했다. KBS와 SBS의 PD는 전혀 몰랐다. 군대 동기인 김상호(MBC '아랑사또전' PD)를 설득해 스터디를 하며 시험 준비를 했고, MBC에 함께 지원했다. 하지만 상호는 붙고 나는 떨어졌다. SBS는 나와 어울리지 않고, 나를 뽑아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해 SBS에 입사하게 됐다. 



◆ 조연출 시절, 연출에게 NO한적 한번도 없어



조연출로 처음 참여한 작품은 '청춘의 덫'(정세호 PD)이었다. 이후 '줄리엣의 남자'(오종록 PD), '화려한 시절'(이종한 PD), '올인'(유철용 PD) 등 많은 작품에서 조연출로 일했다. 정세호 오종록 유철용 이종한 오세강 등 연출 복이 많았다.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배울 점이 많은 선배들이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조연출 때는 정말 잘했다. 나 역시 조연출의 덕을 보고 있지만, 조연출이 작품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조연출이 얼마나 대본을 정확하게 보고, 작가와 연출의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 조연출 시절, 전설 같은 일을 해낸 적이 여러 번 있다. 연출한테 한 번도 'NO'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촬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무릎도 많이 꿇었다.  



드라마 촬영팀이 깡패 같던 시절이 있었다. 굉장히 무례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라면 길거리를 점거해도 당당했다. 시민의 불편함은 무시할 수 있었다. 촬영하다 쫓겨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한 데는 나 또한 연출이 되면 조연출에게 떳떳하게 대우를 받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연출은 조연출인 내가 존경하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였다. 



물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적도 많았다. '올인' 때 최대 고비가 찾아왔다. 사표를 쓸 생각이었다. 연출이 원하는 장소를 구하지 못했는데,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혼나는 게 두렵진 않았다. 유철용 선배는 화를 내는 연출도 아니었다. 정말로 좋은 연출자였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는데,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 데뷔작 '외과의사 봉달희' 연애 강화했다면... 



입봉작은 설날특집극인 2부작 '핑구어리'. 홍수현과 권오중이 주인공이었다. 미니시리즈 데뷔작은 '외과의사 봉달희'. 제대로 된 의학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기획하면서 겁도 나고 재미도 있었다. 이정선 작가와 서울대 병원에서 3주 가까이 숙식하며 취재했다. 병원에서 겪은 이야기 대부분이 드라마에 담겼다.  



경쟁작 중에는 황인뢰 PD의 '궁s'가 있었다. 그토록 존경하던 황 PD와 같은 시간대에 경쟁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의학드라마인 '하얀거탑'과도 비교됐다. 같은 시기에 방송했기 때문. 하지만 안판석 PD와의 비교는 영광스럽고 좋았다. '외과의사 봉달희'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 또한 생각보다 좋았다. 마지막회는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외과의사 봉달희'를 마치고 작가와 서로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흔히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장르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의학적인 부분을 끝까지 가지고 가자고 한 작가와의 처음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시청자들은 연애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더라. 연애를 더 강화했다면 시청률이 더 나왔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번은 SBS 특수분장팀에게 수술 재현을 맡겼는데, "할 순 있지만 어차피 심의에서 걸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시 나는 "심의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해달라"라고 했다. 물론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감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단 1%가 나오더라도 정확하게 표현해야 시청자들이 극에 쉽게 빠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  '유령' 만들며 슬럼프, 여전히 어려운 드라마 



평소에는 게으르지만 일할 때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나는 TV 드라마가 갖는 장르적인 한계를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따라가는 거로 생각한다. 지금의 열악한 제작시스템에서는 최선의 것들을 취하다 보면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 이는 내 기준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이유. 차선이 최선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한다. 



실패했다고 이야기할 정도의 작품을 만든 경험이 없어 슬럼프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엔 행복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연출하는 게 정말로 재미있는지, 다시 하고 싶은지 등 고민이 많아졌다. '유령'을 연출할 때도 무척 힘들었다. 촬영할 때는 별로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유령'은 내가 봐도 내용이 어렵고 연출이 쉽지 않았다.  



이 일이 내 세상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뚜렷하지 않다. 자유로운 점은 적성에 잘 맞는다. 학창시절 벼락치기를 잘했다. 드라마 PD도 마찬가지. 작품이 끝나면 여행도 다니고 한량처럼 지낼 수 있다. 지난해 프리랜서 계약을 한 뒤로는 회사 출근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다. 물론 한 작품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작품을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놀지 못한 데 대한 보상심리가 있다. 다음 작품을 위해 재충전은 꼭 필요하다.  



조금씩 다른 장르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음치인데 밴드 드라마(나는 전설이다)를 만들었다. 이과를 싫어하는데 의학드라마(외과의사 봉달희)를  했다. 기계에 약한데 사이버 수사물 '유령'을 만들었다. 내가 잘 모르고 나한테 어려운 걸 해야 나한테도 긴장감이 생긴다. 내가 너무 잘 알면 시청자가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50대가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은 기껏해야 6편. 신중하게 결정할 생각이다.  





◆ 못다 한 이야기...



- 연출작 시청률 순위: '외과의사 봉달희' '카인과 아벨' '나는 전설이다' '유령' 순. 



- 연출자가 돼서 가장 뿌듯할 때: 작가나 스태프, 배우들이 좋은 연출과 일했다고 이야기해줄 때. 



- 최고의 작품: '외과의사 봉달희'. 내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톤에 가장 가깝다. 



- 아쉬운 작품: '나는 전설이다'. 중간에 작가가 몇 번 바뀌면서 처음에 하려던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드라마에 꼭 담고 싶었던 밴드의 성장 스토리가 빠졌다.  



- 드라마 제작 단계 중 가장 어려운 단계: 캐스팅 과정은 늘 어렵다.



- 궁합이 잘 맞는 작가: 특별히 없다. 어떤 작가와도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는 주의.



- 앞으로 호흡을 맞추고 싶은 작가: 노희경 작가. '화려한 시절'의 조연출 때 노 작가와 인연이 있다. 노희경 작가는 캐릭터를 참 잘 살린다. 톱스타들이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같이 호흡을 맞춘 최고의 배우: 소지섭, 김해숙. 소지섭은 남자가 봐도 멋있고, 연기를 잘한다. 무엇보다 성실하다. 옛날에도 워낙 말이 없고, 불평불만도 별로 없는 친구였는데, 이번에 더 어른스러워졌다. 김해숙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서 좋다. 어떤 역할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 우려했지만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배우: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당시엔 영화에서 코믹한 이미지가 많은 배우였다. 의사 느낌은 가능해 보였지만, 멜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고, 나 또한 반신반의했다. 결과적으로는 반응이 굉장히 좋아 뿌듯했다.



- 발굴한 신인: 없다. 지금의 톱스타 손예진에게도 방송 3사 PD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은 시절이 있다고 한다. 클 사람은 알아서 큰다는 의미. 



- 다시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 같이 했던 배우는 전부. 



-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배우: 조승우와 정말로 하고 싶다. 여러 번 섭외했는데, 그때마다 드라마는 안 한다는 답변을 듣고 좌절했다. 제발 MBC '마의'(조승우 주연 첫 드라마)가 잘 돼서 조승우가 영화나 뮤지컬을 했을 때 얻지 못한 보상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나와 꼭. 



여배우는 하지원. 굉장히 성실한 배우라고 들었다. 주인공의 태도는 촬영장 분위기를 좌우한다. 설사 작품이 망하더라도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 배우를 선호한다. 



- 작품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연출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작품을 만들고 싶다. 



- 연출은 언제까지: 쉰이 넘으면 현장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연출을 하면서 창피하지 말자는 주의다. 아주 잘할 필요는 없지만 작가와 배우, 스태프, 시청자에게 절대로 창피하지는 말자란 각오로 임한다. 그동안 창피한 순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쉰이 넘으면 그런 순간이 많아질 것 같다. 만일 이쪽 일을 계속 한다면 내 상황에서 최대한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김형식 PD는? 1971년생 /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 졸업/ 1998년 SBS 공채 7기 입사 / 대표작 - 외과의사 봉달희, 카인과 아벨, 나는 전설이다, 유령 / 수상경력 -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올해의 방송인 TV연출부문,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신인연출상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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