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노트-15탄] 윤성식PD "언젠가는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 만들련다"

기사입력 2012.12.27 2: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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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이우인 기자] 윤성식 PD는 동료 드라마 PD 사이에서 남성미가 넘치는 액션물을 잘 만드는 연출로 정평이 나 있다. 어릴 적 무술 도장을 유독 좋아하는 것을 빼면, 잘하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선배에게 영향을 받아 방송국 PD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다음부터 그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 



언론고시에서 낙방한 윤 PD는 잠시 광고인의 삶에 매료되기도 했다. 하지만 PD 꿈을 이루기 위해 박차고 나왔다. 지금의 그는 KBS 드라마를 대표하는 젊은 PD다. 윤 PD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만의 연출 스토리를 가감 없이 옮긴다.



◆ 외교관 꿈꾸던 평범한 모범생, PD를 꿈꾸다



고등학생 때까지 드라마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PD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어릴 적 내 꿈은 외교관이었다. 외국어를 좋아했다. 런던에서 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지원하려 했지만, 점수가 불안했다. 그런 내게 당시 같이 살던 매형이 기자를 권유했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문학적인 데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매형은 알았다. 



생각해 보니 해외 특파원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내 목표는 외국에서 사는 일이었기 때문. 이후 유수의 신문사 해외 특파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안고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했다. 막상 신방과에 들어갔더니 학생 70명 중 50명이 방송국 PD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PD가 꿈인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굉장히 즐거웠다. 



연세대 신방과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진로를 상담해주는 수업이 있었다. 기자, PD, 대기업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은 선배들이 찾아왔다. 그중 예능 PD였던 선배가 제일 멋있었다. 그 선배의 생활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PD가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시대' '사람과 사람들'과 같이 감동이 있고 가슴에 울림이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다큐멘터리 PD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해 첫해 MBC에 지원했지만,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MBC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시험을 같이 봤던 학교 선배 여운혁 PD는 붙었다. 모든 친구가 나의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떨어져서 좌절했다.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뭔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노력이면 차라리 사법고시를 보는 편이 낫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 광고회사 사직 후 PD 꿈 이루다 



언론고시에 낙방하고 낙담한 내게 한 친구가 MBC애드컴의 시험을 권유했다. 시험 삼아 지원했는데, 최종면접까지 붙었다. 회사로부터 합격 전화가 왔을 때도 다닐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내 말에 인사 담당자는 당황했다. 합격자가 한 명뿐이고 사장 사인까지 이미 받았는데, 내가 안 다니면 인사부가 혼난다며 관두더라도 일단 다녀보라고 설득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대없이 입사한 광고회사였지만,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굉장히 창의적이고 트렌드에 밝은 곳이었다. 사람들도 멋있었다. 영상 공부도 저절로 됐다. 나도 모르게 열심히 일했다. 국장의 인정을 받는 직원이 됐다. 그렇게 1년 반을 광고회사 직원으로 살았다. 광고 PD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들이 제대하고 방송국에 속속 입사하는 모습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내가 하려던 일은 광고가 아닌데, 나는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국장한테 이런 내 생각을 말하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국장은 자신의 꿈도 방송국 PD였는데 이루지 못해 후회된다며 꿈을 이루라고 응원해줬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미국 출장도 보내줬다. 



국장의 배려로 2주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 광고를 찍었다. 할리우드 스태프가 함께했다. 당시의 경험은 지금까지 도움이 된다. 광고회사를 그만둔 뒤 6개월 동안 공부한 끝에 KBS에 입사했다. 교양국 PD로 4년 반 정도 '아침마당' '아침을 달린다' '6시 내고향' '체험 삶의 현장' 'TV는 사랑을 싣고'를 만들었다. 그때까지도 드라마에는 관심도 없고 잘 몰랐다. 





◆ 교양 PD에서 드라마 PD로 변신 



'TV는 사랑을 싣고'의 재현 촬영을 전담했다.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제대로 된 드라마를 연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드라마국에 문을 두드린 결정적인 계기는 '용의 눈물'. '용의 눈물'을 보면서 이 드라마를 만든 감독이 부러웠다. 'TV는 사랑을 싣고' CP(책임 프로듀서)가 나를 예능국장에게 추천했고, 드라마국장이 예능국장의 추천을 받아주면서 드라마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입사 동기들보다 5년 늦게 시작한 드라마 연출이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적응했다. 김종창 PD의 '동양극장'과 '노란손수건', 전기상 PD의 'RNA' 등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드라마 조연출은 다른 부서보다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좋은 선배들의 작품을 주로 해서 고생은 크지 않았다. 교양국에서 쌓았던 휴머니티와 리얼리티에 대한 감각, 주도적이고 논리적인 구성 능력 등은 드라마를 하면서 도움이 됐다.  



연출 입봉작은 2005년에 방송된 KBS2 '드라마시티 - 계룡산 부용이'. 당시는 입사 10년이 넘었을 때여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다. '계룡산 부용이'로는 드라마에서도 액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체육관에서 오디션을 봤다. 고심 끝에 왕지혜를 여주인공 부용이로, 이민기는 동기인 김규태 PD의 도움으로 캐스팅할 수 있었다. 그때의 작업은 너무도 즐거웠고, 시청률도 10%로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 단막극은 정이현의 단편소설 '트렁크'를 각색한 작품이었다. 심리 미스터리 장르로, 살인사건과 연관된 세 남녀가 주인공이다. 세 번째 단막극으로는 1980년대 봉천동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기획했는데, 도중에 '대조영'의 공동연출을 맡게 되면서 흐지부지됐다. '대조영'을 6개월 정도 연출했을 때 김현준 국장이 미니시리즈 연출의 기회를 줬다. '아이리스' 같은 첩보물로, 영화 '혈의 누'를 쓴 이원재 작가와 8개월 정도 기획안 작업에 몰두했다. 



◆ '페르소나'의 슬럼프, '남자 이야기'로 극복



'페르소나'라는 제목이었다. 남자 주인공 캐스팅도 마쳤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됐다. 그때가 드라마국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적인 요소에 부딪히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처가 깊어 드라마를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사람을 믿는 게 겁이 났다. 그래도 첫 미니시리즈 '남자 이야기'를 만나기까지 슬럼프가 길진 않았다. 



당시 국장이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추천해준 작품이 바로 '남자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 유일하게 본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쓴 송지나 작가와 호흡을 맞추게 될 줄이야. 시청률은 MBC '내조의 여왕'과 '선덕여왕'에 치여 2위에 그쳤지만, 명품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 존경하던 김종학 PD로부터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는 드라마가 끝나면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감격스러웠다.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10부 이후 허술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남자 이야기'를 본 많은 선후배가 연출자로서 내 색깔을 봐주고, 인정해줬다. 상도 많이 받았다. 두 번째 미니시리즈 '각시탈'은 '남자 이야기'를 하기 훨씬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주위에서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데, 친일파 형사가 영웅이었던 형을 죽이고 각시탈이 된다는 설정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당시 국장에게 '각시탈' 판권을 사라고 여러 번 말했다. 



'각시탈' 판권을 구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각시탈'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한 고영탁 국장이 내게 연출을 맡겼다. 편성이 정해진 뒤 유현미 작가와 함께 허영만 작가 집을 찾았다. 허 작가가 제자를 시켜서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다 찢어지고 누렇게 변한 '각시탈' 만화를 찍어 그림 파일로 보내줬다. 만화를 처음 보고서 작가와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로 만들기에는 이야기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각시탈', 대한민국 대표 영웅 만들다   



원작 만화는 강토가 형 강산을 죽이고 각시탈이 되는 이야기가 너무 짧았다. 나머지는 각시탈이 바보 행세를 하면서 거지처럼 유랑하는 내용. 각시탈은 봇짐을 메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무술 고수인 나쁜 놈을 한  명씩 물리친다. 요즘 흔히 접할 수 있는 무협물의 포맷이었다. 유 작가와 궁리 끝에 이야기를 만들었다. 강토 강산 한씨 말고 목단 홍주 슌지 등은 모두 새롭게 만든 인물이다. 



허영만 작가의 또 다른 만화 '쇠퉁소'의 설정도 가지고 왔다. 쇠퉁소와 만화 속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드라마에 넣었다. '각시탈'은 여러모로 어려운 작품이었다. 영웅물을 연속극으로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일제시대라는 아픈 역사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진지한 성찰과 역사의식이 필요했다. 일제시대를 다룬 드라마들이 그동안 별로 성공하지 못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진운도 좋지 않았다. 양쪽에 소지섭(SBS '유령'), 김선아(MBC '아이두 아이두')가 있었다. 처음에 강토로 생각했던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6개월간 매달렸건만, 수포로 돌아갔다. 주원은 8명의 배우를 거쳐 결정된 배우였다. MBC '해를 품은 달'에 출연하기로 한 그를 '각시탈'로 끌어들였다. '해품달'엔 도리가 아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외주제작사 본부장을 통해 MBC 측에 사죄의 뜻을 전달했다. 



방송 전에는 보조출연자의 사망사고도 발생했다. 시청거부 운동이 일었고, 제작진은 나쁜 사람으로 매도됐다. 좋은 드라마, 필요한 드라마를 만들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와 작가의 좌절감은 컸다. 그래도 '각시탈'을 드라마로 만들기 전에 작가와 함께 세운 세 가지 목표(한국형 슈퍼히어로, 일제시대에 대한 관심, 시청률 20% 돌파)는 이뤘기 때문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 





◆ 못다 한 이야기...



- 연출작 시청률 순위: '각시탈' '남자이야기' 순. 



- 연출자로서 가장 뿌듯할 때: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 주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듣고 반응할 때. '남자 이야기' 때 소수지만, 팬들의 애정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각시탈'은 대중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 



- 최고의 작품: '각시탈'. 노력과 열정을 가장 많이 쏟은 작품. 완성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는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아쉬운 작품: '각시탈'. 더 완성도 있게 바꿔보고 싶다. 



- 드라마 제작 단계 중 가장 힘든 단계: 캐스팅 단계. 직접 캐스팅하는 걸 좋아한다. 아주 작은 단역까지도 오디션을 직접 보고 뽑는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이미지의 배우가 있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는 지친다. 



- 궁합이 잘 맞는 작가: 작가들과 잘 지내는 편이다. 누나 작가들이 많아서 그런지, 누나처럼 대하면 작가들도 나를 착한 동생 대하듯 믿어주고 잘해준다.   



- 앞으로 호흡을 맞추고 싶은 작가: 유현미 작가와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다.  



- 같이 호흡을 맞춘 최고의 배우: 故 박용하. 용하는 진정성 있는 배우이자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성실하고 소탈하고 정말로 밝은 친구였다. '남자 이야기' 촬영할 때는 맏형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었다. 종영 뒤 배우 스태프와 함께 2박 3일로 MT를 갔는데, FD처럼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 우려했지만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배우: 주원. 큰 작품치고는 캐스팅이 약했기 때문에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잘해줬다. 워낙 성실하고 착해서 모두 주원을 좋아했다.



- 신인으로 발탁해 지금은 톱스타가 된 배우: 많이 성장한 배우는 박기웅. '남자 이야기' 전에 단막극 '드라마시티 - 러브헌트, 서른빼기 셋'에 출연했는데, 기웅에게 첫 드라마였다. 처음엔 걱정했는데, 리딩을 매우 잘해서 캐스팅했다.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친구다. 김형석 PD의 '연애결혼'과 곽정환 PD의 '추노'에 기웅을 추천했다. 



-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배우: 박시연. '남자 이야기' 여주인공이었는데, 남자들의 이야기가 강하다 보니 분량이 줄어들었다. 많이 미안했다. 



- 다시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 주원이 조금 더 성장하고, 나도 조금 다른 색깔의 드라마를 만들 때 다시 만나서 다른 느낌의 연기를 뽑아내보고 싶다. 



-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배우: 이병헌은 현존하는 한국 배우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여배우는 손예진. 이병헌 손예진과 동시에 같이 한다면 더욱 기쁠 듯. 



- 오마주 삼고 싶은 연출자: 곽정환 PD. 곽 PD는 친한 후배이자 친구이고 경쟁자다. 그와 작품을 보는 취향이 비슷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곽 PD는 나보다 열정도 크고, 그 열정을 불태울 용기가 있는 친구다. 과감하고 도전적이다. 그런 면이 굉장히 부럽다. 이재규 PD도 훌륭하다. 어떤 우여곡절과 제약에도 자신의 기획을 성공시키는 힘이 부럽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자신의 작품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뭔가 가슴에 울림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그 뭔가가 사회적인 분노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친구에 대한 우정이든, 어떤 것이라도 좋다. '모래시계'처럼 훌륭한 드라마를 한 번이라도 만드는 게 꿈이다. 세월이 지나도 느낌이 있는 재즈 음악처럼, 방송된 지 30년 후에도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때는 감독을 그만둬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 연출자로 꼭 해보고 싶은 장르: 액션물은 '각시탈'에서 했으니까 이번엔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내 딸 서영이' 후속 '최고다 이순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젊은 주말극이 될 것 같다. 



- 현장에서는 언제까지: '모래시계' 같은 작품을 만들 때까지. 조직상 CP도 하게 될 거고, 하다 보면 관리자도 되겠지만 연출에 대한 욕심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윤성식 PD는? 1970년생 /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 KBS 22기 공채 프로듀서 / 대표작 - 남자 이야기, 각시탈 / 2009 서울드라마어워즈 최우수작품상, 휴스턴 국제영화제 동상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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