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윤기자의 쉘위게임]-노인을 위한 게임은 없다

기사입력 2013.03.08 4:55 PM
[박재윤기자의 쉘위게임]-노인을 위한 게임은 없다

현업에서 은퇴하신 아버지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으신다. 겨울은 추워서 바깥 나들이가 여의치 않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인 아버지는 종종 컴퓨터 게임을 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아버지가 즐기는 게임은 주로 바둑, 장기, 고스톱 등 보드게임들이다. 넷마블에 갔다가 한게임도 들리고, 피망도 기웃거리다 다음 게임을 찾아가기도 한다. 게임이 재미있느냐 여쭈면 “재미는 무슨…그냥 시간 때우는 거지”라고 멋쩍어 하신다. 아버지의 여생이 얼마나 된다고, 일 분 일 초를 알차고 즐겁게 보내도 충분치 않을 아까운 시간을 그냥 때워 보낸단 말인가.

어차피 컴퓨터 붙잡고 앉아 보내는 시간이라면 좀 더 재미있는 게임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이것 저것 권해보지만 이내 벽에 부딪힌다. MMORPG는 조금만 설명해도 “왜 이렇게 복잡하고 알아야 할게 많아, 너무 어려워”하며 손사래다. 조금 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캐주얼게임은 “늙은이가 주책 같잖아, 다들 손자 손녀 뻘일텐데” 하며 쑥스러워 하신다. 그나마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모바일 게임 몇 가지는 거부감이 없는듯 하다. 일단 어렵지 않고, 누구와 굳이 겨루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아서다.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지만 노인을 위한 게임도 정말로 없다(지난해 서울시와 자치구가 노인이란 명칭을 어르신으로 바꾸기로 한 데 따라 여기 이후로는 가급적 어르신으로 칭하겠다).

어르신을 위한 게임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어르신들은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노년층의 정보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무엇을 하는가 질문에 첫째가 뉴스 검색이고 두 번째가 게임인 것으로 나타났다. 3위는 놀랍게도(!) 채팅이었고, 4위가 이메일, 5위가 온라인쇼핑 순이었다. 게임과 채팅의 비중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어르신들도 얼마든지 다수가 즐기는 MMORPG나 커뮤니티 기능의 소셜네트워크게임에 빠져들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마음만큼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이유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이 거의 없다는 것과, 주위의 시선이 아직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노령화에 발맞춰 실버세대를 위한 산업이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게임 산업은 철저히 젊은 층만 바라보고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게임백서에도 게임이용자 연령별 현황은 9세~49세까지만 나타나 있다).

이는 아마도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개발자나 기획자들이 모두 젊기 때문일 것이다.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늙어보기 전에는 아마 노인을 위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열일곱 살 때부터 해온 ‘리니지’를 환갑이 넘어서도 즐기고 그땐 ‘리니지5’를 개발하고 있겠지 생각할 게다. 온라인게임은 딱히 엔딩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7살 때 ‘방귀대장 뿡뿡이’에 열광한 아이가 스무살에도 “뿡뿡이가 좋아요~” 하며 춤추던가? 스무살에 힙합에 푹 빠졌다고 오십이 넘어서도 “난 울고 싶을 때면 힙합을 춰” 하고 있을까? 사랑도 변하는데, 문화에 대한 기호가 변하지 않을리야.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럼 노년이 되면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게임에 흥미가 사라지게 된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 같다. 그건 아니다. 게임마니아인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가 출연한 TV 토크 프로그램 ‘두드림’에서 개그맨 양세형이 “온라인게임 정모에 나가보니 ID로만 접했던 초고수가 60대 후반 어르신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최근 한 매체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고령자가 비디오게임을 즐기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낮아진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팀은 63세의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비디오게임을 하는 지, 얼마나 자주 하는 지를 조사해 게임을 하지 않는 그룹에 비해 게임을 해봤거나 정기적으로 하는 그룹의 행복감이 더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노년에 게임을 즐기는 것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좋은지는 이 연구 결과 말고도 이미 수차례 발표된 바 있다. Xbox 360, 닌텐도 Wii, 플레이스테이션 등 비디오게임들은 동작인식기술을 앞세워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들을 출시해 실버세대의 게임문화에 먼저 다가섰다. 그리고 각종 보드게임과 기능성게임들도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이 건강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노력은 실버세대를 ‘고객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뭐 어떤가? 어르신들도 당신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에 기꺼이 돈을 쓸 준비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찜질방에서 재롱잔치 펼치고 건강보조식품 팔아먹는 사기꾼들에게 바쳐지는 돈은 차라리 게임산업이 가져가는 것이 백배 천배 바람직하다.

그러니, 온라인 또는 스마트폰게임사들이여. 아이템 사려면 엄마 아빠 졸라야 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만 목매지 말고, 셧다운제로부터도 자유롭고 애들보다 시간도 많은 어르신들의 마음에 쏙 드는 게임을 만든 뒤 이런 이벤트 한번 하면 어떨까. ‘30 레벨 달성하신 60대 여성 유저분 중 추첨을 통해 안마의자, 혈압계, 한의원 이용권을 드리며, 일주일간 매일 접속하시는 50대 이상 남성 유저분께는 화이트데이를 맞아 친구로 등록한 여성에게 선물할 수 있는 사탕박스 아이템을 드립니다~’

박재윤 기자 parkjy@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