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별이’호, "최종 목적지는 ‘개그 선진국’입니다"(인터뷰)

기사입력 2010.02.05 8: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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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장기영 기자] “제 남편이 미국사람인데 너무 웃기다고 따라하는 경지까지”, “술이 덜 깨서 멍한 상태인 저를 빵빵 터지게 만드는 센스”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달콤한 낮잠에서 깨어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든 시청자들은 MBC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고)에 등장해 웃음을 선사하는 두 명의 거지와 한 명의 중학생 때문에 떨어진 배꼽을 찾기 바쁘다.

허름한 벤치 하나를 배경 삼아 실랑이를 벌이던 세 사람이 누더기와 교복을 벗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깔끔한 캐주얼 차림에 분장을 걷어낸 얼굴은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을 잊게 만든다. ‘하땅사’ 첫 회 MVP에 빛나는 ‘설이별이’ 팀의 각설이 ‘설이’(문규박), 앵벌이 ‘별이’(서태훈), 중학생 ‘방용’(이방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4년간의 출항 준비…연료는 신문지와 라이터, 엔진은 우정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개그 코너의 구성원들이 탁월한 호흡과 의견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웃음의 파도 위를 항해할 수 없다. 맏형 방용과 둘째 규박, 막내 태훈은 형과 아우 혹은 선배와 후배가 아닌 친구이자 동료로 ‘설이별이’호의 닻을 올렸다.

“태훈이랑 둘이서 아이디어를 짜고 중학생 역을 한 여자 개그맨에게 맡겼는데 문제가 생겨서 방용이 형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됐어요. 맏형이 일방적으로 끌고 간다기 보다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요. 방용이 형은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에요”(태훈)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세 사람은 신문지와 라이터 하나를 밑천으로 의기투합했다. 대학로 소극장을 떠돌며 유명 개그맨들의 그림자조차 눈부셔 했던 그들은 현 소속사인 컬트 엔터테인먼트의 두 대표 김태균, 정찬우 앞에 ‘설이별이’의 가능성을 시험 받던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장님 두 분이 신인 개그맨들만 따로 모아서 코너 검사를 하셨어요. 거지 분장을 하기 위해서 신문지 재로 세수를 했죠. 셋이 처음으로 같이 짜는 코너인데다 대선배들 앞이다 보니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잔뼈 굵은 면접관 두 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쉴 수 있었어요”(규박)

첫 출항서 ‘하땅사’ MVP…바람은 변해도 뱃머리는 한결같이

코너는 점점 틀을 갖춰나갔지만 정박할 항구가 마땅치 않아 방황하던 ‘설이별이’호.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그들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타 방송국 개그 프로그램의 아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가 야심차게 내놓은 ‘하땅사’가 바로 그것. 지난 2009년 10월 11일, 세 사람은 힘차게 호줄을 던졌다.

“‘하땅사’는 맡은 코너만 선보이고 퇴장하는 다른 개그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전 출연진이 함께 호응하고 즐기는 분위기라 버라이어티에 대한 감각까지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그저 사람들이 웃어주길 바라며 혼신의 힘을 다했죠. 첫 회 MVP가 저희 몫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방용)

대학로 공연에서의 좋은 반응이 안반극장에서도 이어지자 세 사람의 어깨는 으쓱해졌다. 드문드문 알아보던 팬들은 하나, 둘 늘어 팬카페 개설에 팬클럽까지 결성됐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거나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하땅사’만의 고유한 특징인 꼴지 코너 폐지제도 때문이다.

“한 주, 한 주가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유행은 시시각각 변하잖아요. 반드시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더욱 악물었죠. 새로운 코너에 대한 구상도 병행해야 해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 까지 머리를 쥐어짜고 또 쥐어짜죠. 요즘은 분장 없이도 웃길 수 있는 코너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어요”(규박)

발은 땅, 머리는 현실 위를 걷는다…최종 목적지는 ‘개그 선진국’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웃음에 대한 갈증은 개그맨을 생각하게 한다. 세 사람은 일주일 내내 ‘설이별이’ 공연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끊임없이 발품을 팔며 아이디어를 찾아 헤맨다. 누군가의 지루한 일상 속에 무심코 버려지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까지 그들에겐 훌륭한 개그 소재가 된다. 손수레가 킥보드로, 쓰레기봉투가 가방으로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있었던 이유다.

“길거리를 걷든 지하철을 타든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요. 지금의 흐름을 유지해야 하거든요. 자칫 흐름이 끊어지면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죠. 특히나 단순히 개그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 MC, 가수까지 겸한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저희에게 노력이란 도태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나 마찬가지예요”(태훈)

세 사람은 이미 SBS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 중고 신인. 그러나 중고 신인 역시 신인이긴 마찬가지다. 시작의 설렘으로 가득 찬 이들에겐 아직 무대 위에 그려내지 못한 꿈이 너무도 많다. 슬픔의 물살마저 웃음으로 가르고 싶어 하는 ‘설이별이’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풍자를 담은 친환경 개그를 해보고 싶어요. 비싼 학자금 허덕이는 대학생들, 높은 현실의 벽에 막혀 한숨짓는 취업 재수생들의 애환을 담은 그런 개그요. 어찌 보면 딱딱해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풀어내고 싶어요. 거창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를 개그 선진국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어요”(규박)

사진 = 강정화 기자

장기영 기자 reporterjang@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