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봉준호 "크리스 에반스가 먼저 출연제의, 안믿겼다"(인터뷰①)

기사입력 2013.07.24 7:00 AM
'설국열차' 봉준호 "크리스 에반스가 먼저 출연제의, 안믿겼다"(인터뷰①)

[TV리포트=김수정 기자] "크리스 에반스가 오디션을 신청했다고? 믿기 어려웠죠"

영화 '설국열차'(봉준호 감독, 모호필름·오퍼스픽쳐스 제작)는 한국영화 역사상 전에 없던 프로젝트다. 43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본이 투입됐고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 등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봉준호 감독(43)이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13년 전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할 프로젝트 아닌가.

봉 감독이 "암 덩어리가 빠져나간 기분"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설국열차'에 쏟아지는 관객과 영화계 관계자들의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봉 감독은 자신에게, 그리고 '설국열차'에 쏟아진 기대를 오롯이 충족시켜준다. 제대로 만들었단 얘기다.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가진 그는 "'설국열차'를 영화화해야겠다고 결심할 때만 해도 이렇게 고생길이 펼쳐질 줄 몰랐다. 기차에 대한 로망으로 시작했는데, 원작이 가진 드라마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가 2004년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설국열차'라는 프랑스 만화를 접한 지 9년 만에 대중 앞에 공개된 '설국열차'는 기획단계에만 7년, 제작단계에만 꼬박 2년 여의 세월이 걸렸다.

    

"'설국열차'가 프랑스 외의 나라에서 출판된 게 한국이 유일하더라고요. 영어권에서도 출판되지 않았어요. 그걸 제가 우연히 본 거죠. 빙하기가 찾아와 인류가 멸망한 것만 해도 이미 가관인 이야기인데, 기차를 구성하는 드라마도 흥미진진한 거죠. 운명의 가시밭길은 전혀 모른 채 '나 이거 영화 할래!'…. 대책 없이 해맑았네요.(웃음) 원작의 위대한 발상, 유니크한 설정은 가져오되 그 속의 인물, 드라마는 제가 새로 썼습니다."

꼬리칸에서 식물칸, 교실칸을 거쳐 엔진칸까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의 맹렬한 돌진을 영화는 뜸들이지 않고 속도감 넘치게 그린다. 각 기차칸 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10년간 봉 감독 머리에서 숙성된 아이디어는 '설국열차'라는 새로운 세계로 탄생했다.

액션과 상상력을 조미료 삼아 그 안에 보수와 진보, 기능주의와 갈등주의를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관을 담아냈다. 외신의 평대로 봉준호 감독은 할리우드도 십여년간 못한 일을 '설국열차'를 통해 속 시원하게도 이뤄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차치하더라도 '설국열차'는 드라마만 따로 놓고 봐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캐릭터마다 실타래처럼 얽힌 이야기는 125분간 관객의 마음을 움켜쥔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원작의 이야기는 영화적이지 않았어요. 영화화를 결심했을 때부터 이야기는 제가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설국열차'는 인물 간의 관계, 그 관계의 비밀이 있는 영화죠. 하지만 동적인 우리 영화에서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으니 드라마의 배분이 중요했어요. 드라마와 액션을 조화롭게 배분시키는 게 관건이었죠."

'설국열차'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배우들의 허를 찌르는 연기다. 틀니를 끼고 들창코를 한 틸다 스윈튼의 파격변신은 물론 옥타비아 스펜서, 제이미 벨, 이완 브렘너 등 그야말로 믿고 보는 세계적 배우들 호연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크리스 에반스의 묵직한 연기. '어벤져스'와 '퍼스트 어벤져'에서 슈퍼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하며 할리우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그가 '설국열차'에 탑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국내외 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봉 감독은 "크리스 에반스에게 우리가 시나리오를 건넨 게 아니다. 그가 먼저 커티스 역을 연기하고 싶다고 오디션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사비를 들여 보스턴에서 LA로 오디션을 보러 왔어요. 고작 30분 정도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캡틴 아메리카가 온다니! 안 믿겼죠. 알고 보니 쿠엔틴 타란티노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크리스에게 제 얘길 많이 했다더라고요. 사실 우려도 많았어요. 캡틴 아메리카의 근육을 가진 그가 꼬리칸 반란의 주동자라니 말이에요. 결과적으론 액션도, 눈빛도 완벽했습니다. '설국열차'는 그간 크리스 에반스의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작품이 될 거예요. 뿌듯하고 고마운 일이죠."

  

그는 "크리스 에반스의 출연을 결정하고 그와 허심탄회하게 얘길 나눴다. 하지만 그 뒤로는 변호사들끼리 계약 조건, 촬영 기간, 출연료를 두고 피터지게 전쟁을 벌였다더라. 정작 감독과 배우는 편하게 만나는데, 아이러니한 일이다"고 전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근육질 몸매에 비해 섬세한 구석이 있는 친구예요.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더라고요. 스태프끼리 '근육이 아깝다'고 농담할 정도로 낯가리는 성격이던데요? 사실 크리스를 촬영할 때마다 긴 속눈썹이 너무나 예뻐서 혼자 얼굴 빨개진 적이 있다니깐요.(웃음)"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