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스크린] "그녀·호텔·한공주"…천만영화 안 부러운 아트버스터 돌풍 ③

기사입력 2014.06.22 10:01 AM
[상반기 스크린] "그녀·호텔·한공주"…천만영화 안 부러운 아트버스터 돌풍 ③

[TV리포트=김수정 기자] '아트버스터'. 최근 영화 보도자료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단어다. '블록버스터'(Blockbuster)에 '예술'(Art)이 더해진 신조어로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란 뜻이다.

아트버스터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이전엔 다양성 영화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단어로 예술영화를 통칭했다. 다양성 영화란 영화진흥위원회의(영진위) 심사를 거쳐 예술성과 작품성을 지녔다고 인정받은 영화를 뜻한다. 전용관 혹은 멀티플렉스 협력극장에서 상영되며 지원금을 받는다.

올해 상반기 극장가는 예술영화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예술영화가 특정 마니아층만 소비해온, 즉 '보는 사람만 보는' 영화였다면 최근에는 예술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 예술영화는 지루하다는 인식을 깨고 대규모 배급의 상업영화 사이에서 고무적인 흥행 성적을 거두며 아트버스터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잘 만든 아트버스터, 열 천만영화 부럽지 않은 모양새다.

■ 아트버스터 흥행돌풍 서막…'인사이드 르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1월부터 극장가는 아트버스터 열풍으로 뜨거웠다. 국내에서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12만2673명을 동원하며 다영성 영화 흥행 청신호를 켰다.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역시 입소문을 타고 최종 스코어 5만100명을 기록했다. 퀴어 코드,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을 딛고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달군 다양성 영화의 바통을 이어받은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더욱 뜨거운 기세로 관객 몰이에 나섰다. 개봉 이틀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한 '인사이드 르윈'은 최종 스코어 10만5449명을 달성했다. 소위 다양성 영화의 흥행 대박 기준인 10만 명을 돌파한 것. '인사이드 르윈'을 기점으로 다양성 영화가 주 소구층인 시네필을 넘어 대중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며 그 타깃층을 넓히기 시작했다.

■ 아트버스터의 전성기…'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한공주', '그녀'

'인사이드 르윈'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흥행은 시작에 불과했다. 3월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의 죽음을 둘러싼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와 로비보이 제로의 미스터리 어드벤처를 그린 영화다.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애드리안 브로디가 출연했다. 황홀한 미장센과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위트, 여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까지 더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76만5386명 관객을 동원, 아트버스터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대한 입소문 열풍은 개봉 전부터 시작됐다. 해외 언론, 평론가들의 영화 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네필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 퍼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개봉과 함께 더욱 가열차게 확산됐다. 이를 증명하듯 개봉 첫날 58개 관으로 시작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최대 233개 관까지 확대됐다.

주로 외화를 중심으로 다져진 다양성 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로는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가 자존심을 지켰다. 최종 스코어 22만3830명을 기록한 '한공주'는 지난해 개봉한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14만490명)의 기록을 깨고 한국 독립영화 극영화 부문 최단기간 최다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경신했다.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사건 이후 남은 사람들과 아픔을 견디고 버티며 다시 살아가려고 일어서는 성장영화다. 한 여고생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사건을 한공주의 시선으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에 국내외 언론들의 극찬이 쏟아지며 관심을 모았다.

최근에는 영화 '그녀'(스파이크 존즈 감독)가 아트버스터 열풍을 이어받아 장기 흥행에 돌입했다. 대필 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제86회 아카데미 각본상, 제71회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했다.  스파이크 존즈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아름답고 매혹적인 음악, 독창적인 이야기로 재관람 열풍까지 일으키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 아트버스터 흥행도 빈익빈 부익부?

이처럼 아트버스터는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 가운데서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충족하며 극장가에 흥행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멀티 플렉스 홍수 속 씨네큐브, 스폰지하우스,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코드 선재, 아트나인 등과 같은 예술영화관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 역시 아트버스터 흥행 돌풍이 낳은 고무적인 성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트버스터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 유수 영화제 수상작, 대기업의 다양성영화 브랜드 타이틀이 따라 붙지 않은 경우 치열한 배급 경쟁에서 밀려나기 일쑤라는 것.

다양성 영화 홍보를 맡은 한 관계자는 "영화의 힘이 배급으로 이어진다고 하지만 시작부터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다양성 영화, 아트버스터라는 수식어로 홍보하지만 실제 개봉관수를 보면 일반 상업영화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개봉을 앞둔 한국 다양성 영화 배급을 맡은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최근엔 상업영화보다 다양성 영화 배급 시장이 더욱 치열하다"며 "힘들게 개봉해도 2주차부터 교차상영하는 등 찬밥 신세를 받는 것을 지켜보면 허무하다"고 토로했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영화 스틸 및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