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서 "美日체류…외톨이 생활 패닉이었죠" [인터뷰①]

기사입력 2018-01-25 08: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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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수정 기자] 배우 최희서의 재발견은 지난해 한국영화가 거둔 가장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다. 영화 '박열'(이준익 감독)에서 일제에, 부정에,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는 후미코를 그는 분명 충무로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카테고리의 배우였다. 강인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인품과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던 후미코의 모습은 카메라 밖 자연인 최희서와의 모습과도 상당 부분 겹쳐 보인다.



아버지를 따라 학창시절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보낸 학창시절은 말괄량이였던 최희서를 조용하고 책 읽기 좋아하는 소녀로 바꿔놨다. 낯선 나라, 낯선 교실, 낯선 친구들이 익숙해질 즈음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떠나야 했던 순간들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고, 담금질했다. 



공부도 그중 하나였다. 외국인으로서 튀지 않기 위해 사색하고, 책을 읽고, 학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한편엔 장난기 많고 활발했던 어린 시절의 최희서가 남아 있었다. 조용한 외국인이 아닌, 마음껏 제 개성을 펼쳐 보이고 싶은 열망은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연극동아리 연희극회에 들어가 배우의 꿈을 키웠고, 미국 UC 버클리 교환학생 시절 공연예술을 부전공해 한국인 최초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금씩 배우의 길에 한걸음 다가가던 그는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오랜 무명시절을 겪었지만 늘 그래왔 듯 묵묵히 제 길을 걸었다. 오디션에 연거푸 떨어져도 좌절하긴커녕 오히려 더 활발한 단편영화 작업을 펼쳤다. 영화 '동주', '박열'로 이어진 최희서를 향한 극찬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닌 셈이다.





■ 다음은 최희서와 나눈 일문일답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어떻게 지냈나



한창 영화 '아워바디' 촬영하고 있을 때 시상식 시즌이 시작됐다. 아침에 촬영 끝내고 부랴부랴 메이크업 받고 드레스 입고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를 마음에서 지우는 데 오래 걸렸을 것 같다.



맞다. 한창 '박열'을 떠나보내고 지내다가, 며칠 전 박열 기념관에서 내 앞으로 소포를 하나 보냈더라. 후미코의 재판기록이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돼 발간됐다고 선물로 보냈더라고. 재판기록을 일본어로 읽느라 애를 먹었거든. 고어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소포를 1월 3일에 받았는데, 한창 새해를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던 차에 받으니 더 눈물이 나더라. 



-책 얘기가 나온 김에, '박열' 개봉 당시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했다. 글 솜씨가 제법이던데 출판 제의는 없었나.



후미코 자서전을 낸 출판사에서 함께 에세이를 내잔 얘긴 했었다. 정말 감사한 제안이긴 했지만, 난 하나의 일에 몰두하면 그것밖에 못하거든. 연기를 못 할 것 같더라. 조금 더 잘한 다음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다.(웃음)



-민감한 사춘기 시절을 온전히 해외에서 보냈다. 



만약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됐을 거다. 발랄하고 시끄럽고 개구진 여자아이 같은.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말이 안 통하니 혼자 조용히 있었다. 어린 나이에 외톨이로 있는 게 얼마나 큰 상처였겠나. 이제 좀 적응하고, 오사카가 내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다시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또 새로 친구를 사귀고 적응해야 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가고. 거의 패닉이었다.



-해외에서 보낸 학창시절이 성격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나



원래는 그런 성향이 아닌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뛰어놀기보단 혼자 책 읽는 시간이 많았지. 그래도 사춘기에 겪었던 일들이 연기하는 데 소스가 됐다.



-이를테면?



서울에서만 자랐다면 접하지 못할 다양한 사람, 문화를 배웠다. 그때의 기억이 캐릭터를 연구하거나 만들 때 좋은 자료가 된다. 소재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가령 동성애가 소재일 경우, 난 학창시절 동성애자 친구들을 많이 봐왔거든. 성정체성이 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돼선 안 된다고 배워왔다. 웬만한 충격적인 스토리라도 다 이해가 된다. 배우로서 장점인 셈이지.





-그럼에도 충격적인 영화가 있었다면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 '님포매니악'도 충격적이었는데, '도그빌', '브레이킹 더 웨이브'도 굉장했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서울에서 쭉 살았다면 연극영화과를 갔을 거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열심히 공부하는 데 집중해야 얌전한 학생처럼 보일 것 같더라. 공부만 하다 보니 한편으론 표현하고 싶고, 무대에 서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일본에서 '심청전'이란 연극을 했는데, 조용하기만 했던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심청이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지. 여하튼 내 안에 계속 어떤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 '킹콩을 들다'(09) 이후 무명이 길었다. 지칠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한 동력이 뭔가.



상업영화 오디션에 떨어져도 단편영화, 연극을 끊임없이 했다. 연기를 3개월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연기를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인정받지 못하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내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디션에 연속해 떨어져도 좌절하기보단 쉽게 떨쳐버렸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씨앤코이앤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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