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종 "'마우스피스'는 각자의 이야기…공연할 수 있는 것에 감사" [인터뷰①]

기사입력 2020.08.25 8:27 AM
이휘종 "'마우스피스'는 각자의 이야기…공연할 수 있는 것에 감사" [인터뷰①]

[TV리포트=김은정 기자] 감정의 응집과 휘몰아침, 종잡을 수 없는 방향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분출된다.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호흡까지 빼앗긴 채 집중하게 되는 마성의 흡인력. 극상의 표현력으로 공연장을 흔들어 놓은 뒤 무대 아래에서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장난기를 발산하는 다채로운 색을 지닌 배우 이휘종의 이야기.

배우 이휘종은 지난 7월 11일부터 대학로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마우스피스’에 출연하고 있다. ‘마우스피스’는 입을 대는 부분을 칭하는 용어이자 대변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삶을 소재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 극장으로 대변되는 예술의 진정성 등에 대해 질문한다.

이휘종은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예술적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데클란’을 맡았다. 한 달 이상 데클란으로 무대에 서는 소감을 물었다.

“지금은 계속 공연을 하는 것이 감사하고 또 신기하다. 최근에는 트리플(한 배역에 세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것)을 많이 했는데 더블을 하게 되면서 배우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지금 공연을 하고 있고, 관객분들이 보러 와주시는 것에 가장 큰 감사함을 느낀다. 공연에 좋고 나쁨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 하는 공연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웃음) 참 감사한 8월이다.”

관객은 중년의 극작가 리비가 쓴 작품을 보는 동시에 작품의 소재로 이용된 데클란의 삶과 선택을 보게 된다. 작품은 이런 방식을 통해 계층간 문화 격차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이야기되어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다룰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되묻는다. 척 보기에도 쉽지 않은 이 작품의 대본을 처음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어떤 작품이건 대본을 처음 받은 후에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다. 다행히 함께 하는 배우분들이 대본을 깊이 분석하고 심도 있게 봐주셨다. 텍스트를 볼 때 가볍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처음 다가온 건 ‘한 소년과 여자 작가의 이야기’라는 거다. 무엇보다 기존에 해보지 못한 캐릭터라서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대본을 봤다. 개막 2주 전까지는 대사를 외우는데 바빴다.”

이휘종은 이번 작품이 더블 캐스팅에 대본량이 많다 보니 연습 방법에 대한 논의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다른 강점을 가진 리비 역 김여진, 김신록 배우와의 연습을 떠올렸다.

“(김)신록 배우와 처음 일주일 정도 장면 만들 시간이 있었다. 누나는 문장의 이유, 말, 사이, 비트 등을 찾으려고 했다. 나에게 ‘이 이야기는 왜 하는 것 같아?’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답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밥 먹었어요?’라는 질문은 내가 배고픈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친한 척일 수도 있잖나. 이런 부분을 말로 분석하는 걸 잘 못 했었는데 신록 배우와 하면서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김)여진 선배의 강점은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나이가 가깝다는 거다. 나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여진 배우는 눈으로 말하는 게 크게 다가온다. 눈으로 전달하려는 감정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극 중 데클란은 만 17세 소년이다. 현재 30세인 그는 “요즘 17세라고 하면 신조어나 줄임말을 많이 사용하잖나. 10대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그런 느낌으로 다가갔다”고 밝혔다.

“원래 대본에도 쓰여있다. 데클란은 심한 욕도 하고 장난도 심한 친구다. 이번에 한국 무대로 처음 가져오면서 가장 신경 쓴 건 관객분들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거다. 물론 정확한 답은 없겠지만 생각만 하고 시도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같이 데클란를 연기하는 장률 형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형보다 내가 더 17세에 가까우니까 내가 먼저 걱정을 내려놨다.(웃음) 그리고 ‘17세라고 이렇게 안 하겠나?’ 등의 대화를 했다. 매 장면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 끝까지 놓지 못했던 고민스러운 장면도 많다. 연습 때 리비의 이야기라고 틀에 가두지 말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렇게 정해놓고 연습을 해보니 데클란이 너무 힘이 없더라. 우리끼리 타협점을 찾은 건, 이건 각자의 이야기라는 거다. 그리고 장면 만드는 것에 더 중점을 두게 됐다.”

이휘종은 ‘마우스피스’를 하며 독백 장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사건이 벌어지거나, 동생 시안에게 하는 이야기로서의 독백은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독백에 대한 고민이 컸다는 것.

“일이 일어난 후에 언덕으로 올라간 후 엄청난 양의 독백을 소화해야 한다. 대본을 손에서 놓고 연습할 때까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공연장 들어오기 전까지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었다. 지금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률 형 공연을 봐도 전체를 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 많았는데, 극장이라는 게 힘이 있는 것 같다. 무대에 올라서 보니 ‘그냥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됐다.”

데클란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환경적 제약으로 이를 펼칠 수 없던 비운의 아이다. 이휘종이 생각하는 데클란은 어떤 인물일까.

“거칠고 서툴며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런 것들이 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욕을 했는데 돌아보면 세 보이고 싶고 무시당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즉 거친 면모들은 나를 포장하는 요소로 생각했다. 또 데클란은 친구가 많이 없다. 직설적으로 말도 못 하고, 화두를 넘기고 자기를 넘기려는 성향이 강한 친구다. 자기방어가 센 인물이라,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과 있을 때 그런 면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한다. 가까운 사이인 시안과 엄마와 있을 때, 또 리비와 행복했던 때의 모습이 그렇다.”

데클란은 언덕 끝에 아슬하게 서 있는 리비를 구하면서 가족의 존재를 운운한다.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느냐’고. 자신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개리에게 가기 전이라 더욱 인상적인 장면이었는데, 데클란은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 물었다.

“데클란은 그 순간 분명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이 사람의 사정이 어떻든 병이나 사고가 아닌 자살로 죽으려는 거잖나. 그걸 보고 순간 7살 때 목을 맨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그 사람이 책임지지 않고 떠난 ‘나’를 떠올린 것 같다.”

극 중 데클란은 ‘신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하나뿐인 여동생 시안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주로 꼬맹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시안은 외국 이름이고 꼬맹이는 한국어잖나. 꼬맹이가 더 다가가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스스로 시안이라는 존재가 내 깊숙이 다가올 것 같았고, 관객들도 누군가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의 뜻을 알아봤는데 ‘데클란’은 '기도하는 사람, 선으로 가득 찬'이었고, 리비는 '내 심장'이라는 의미더라. 인터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찾아봤다.(웃음)”

극에서 데클란은 ‘내 그림을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곧 누군가 보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다. 배우도 보여지는 삶을 사는 존재인데,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묻자 “늘 생각한다”고 즉답했다.

“집에서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는 마주치게 되어있잖나. 물론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 ‘큰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과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덕분에 배우가 되기 전부터 지켜야 하는 선이 생긴 것 같다. 이게 좋은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을 하면서 불편했던 건 없다. 생각보다 내가 막 ‘관심을 주세요!’ 하는 사람도 아니다. 은은하게 관심을 주세요, 저 살아있어요 정도랄까. 아직은 그런 관심이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공연을 하면서 관계자, 관객, 불특정 누군가에게 인식된 게 4년 정도밖에 안 됐다. 작품을 하는 것도 감사하고, 관심 가져주는 것에 대해 끝까지 감사할 거다. 불편함보다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크다.

또 배우는 직업이잖나. 일상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무대 위에서는 ‘잘한다’는 소리 듣고 싶다. 무엇보다 ‘열심히 한다’는 소리는 무조건 들어야 하는 성격이다. 못하면 열심히라도 해야 언젠가는 잘하게 될 것 아닌가. 예술학교를 나오다 보니 잘하고, 끼 많은 친구들이 많았다. ‘쟤 잘한다’ 생각하면서 남들 몰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열심히 하면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극 마지막에 데클란은 언덕에서 그림을 찢어 던진다. 아무도 보지 않게 갇혀있던 그림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뿌린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 장면에서는 늘 ‘함께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너무 좋다. 그런데 던져야만 하는 상황’ 이런 마음으로 그림을 던진다. 그때는 누군가 그림을 보는 건 중요하지 않다. 리비의 기억을 정리하게 위해 찢는 거고, 마지막에 시안을 찢는 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의 독백을 디자인할 때 ‘정말 언덕에서 내려가면 가족들을 만날 수 없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시안의 그림을 찢으면서 암전이 되는데, 그때부터 데클란은 스스로 살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는 이야기의 전달자이자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배우 이휘종은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뉴스도 있는 거고 언론 조작이라는 말도 생긴 것 같다. 요즘 너무 많은 정보와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증식하고 있다. SNS도 같은 맥락이다. 조금 더 자극적이고 볼만하게 만드는 데 급급하다. 그래서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니 좋은 쪽으로 바꾸어 가면 좋겠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좋겠다.”

김은정 기자 ekim@tvreport.co.kr / 사진=TV리포트DB, 연극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