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모차르트를 꿈꾼 천재 살리에리 (인터뷰①)

기사입력 2014-04-12 0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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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 조지영 기자] 새하얀 도화지처럼 말간 얼굴이다. 크진 않지만 옅은 쌍꺼풀을 가진 눈은 커다란 세상을 담고 있다. 어느샌가 촉촉해진 눈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한 소녀를 이야기하고 있다. 깊은 동공을 들여다보니 세상도 울고 공주도 운다. 그리고 배우 천우희(27)도 울고 있다.



어딘가 사연 있을 법한, 오묘한 천우희가 영화 '한공주'(이수진 감독, 리공동체영화사 제작)를 만났다. 그는 '한공주'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던 소녀 한공주를 연기했다. 아니, '연기했다'보다는 '한공주가 됐다'가 더 어울린다.



112분 동안 배우 천우희는 없었다. 화려한 액션이 있는 것도, 혼을 쏙 빼놓는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말수가 없어 매우 조용했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1시간 52분이 1분 52초가 된 건 오롯이 공주 천우희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야속한 생각이 든다. 몰래 숨겨뒀던 달콤한 사탕을 동생에게 뺏긴 기분. 양복 안주머니에 감췄던 비상금을 아내에게 걸린 억울함. 숨겨놨던 천우희가 만천하에 알려질 걸 생각하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사실 천우희는 충무로의 숨겨진 보석이었다. 시작은 지난 2004년 '신부수업'(04, 허인무 감독)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깻잎 무리 중 두 번째다. 처음엔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얄궂게도 두 번째 작품이었던 '허브'(07, 허인무 감독)에서도 깻잎2다. 역시 이번에도 존재감은 미비했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 심상치 않았다.



'마더'(09, 봉준호 감독)에서 맡은 미나는 진태(진구)의 여자친구로 파격적인 베드신에 도전했다. 비단 노출을 해서가 아니다. 독특한, 오묘한 천우희만의 아우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곤 '써니'(11, 강형철 감독)의 상미를 꿰찼다. 730만명이 알아보는 '본드녀'가 됐다. 천우희의 진가가 제대로 빛을 본 순간이다.





필자가 자신 있게 '연기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천우희는 배우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진짜 광대다. '한공주'도 그렇다. 그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한공주'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세계가 먼저 주목한 빛나는 발견'이라고 하지만 글쎄다. 이미 관객들은 주목하고 있었다. 천우희가 굉장히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였다는 걸.



"요즘 칭찬을 많이 들어서 부끄럽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이런 반응은 아마 '써니' 이후 처음인 거 같아요. '한공주'의 제 연기가 아주 자신감 넘치거나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이렇게 개봉을 앞두고 보니 '아직은 연기를 해도 괜찮겠구나' 정도죠. 하하. '한공주' 하길 참 잘한 거 같죠? 흐흐."



천우희는 '한공주'를 통해 '연기를 계속 해봐도 좋겠다'라는 확신을 했단다. 데뷔 10년 만의 깨우침이라니…. "겸손이 과하다"라는 핀잔에 "진짜, 정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느님도 어쩌지 못하는 슬럼프가 닥쳤단다. 한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묵은 한숨을 토해냈다.



"'써니' 이후 주변의 기대가 컸어요. '넌 이제 앞으로 잘 풀리겠다'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었어요. 불안하거나 조급하지는 않았는데 주변에서 워낙 기대하니까 저절로 들떠지더라고요.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고요. 왜, 칭찬받으면 만족하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해서 전보다 칭찬을 더 많이 받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죠.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도 재능 많은, 대단한 배우들이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급함이 생겼던 것 같아요. 또 성인 역할을 하기도, 그렇다고 학생 역할을 하기도 애매한 시기였으니까요. 이 애매한 순간을 잘 넘겨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스트레스가 심했죠."



이렇게까지 속내를 털어놓으니 천우희의 고민이 '과한 겸손'만은 아닌듯싶다. 내심 완벽주의자인가 싶어 의심의 눈초리를 해봤지만 그런 건 또 아니란다. 다른 일에서는 태평한데 연기만큼은 스스로 자학하는 스타일이라고.



"창피한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제가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청소년 연기대회에서 연기상도 받았거든요.(웃음)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았던 거죠. 대학교에서도 동기 중에 잘하는 축에 속했거든요. 그런데 제 깜냥을 금방 파악했어요. 하하. 정말 손톱만 한 감을 가지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저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같이 반성했어요."





천우희의 고해성사는 어느 누구보다 투명하고 진솔했다.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다고 말하며 붉히는 얼굴이 밉지 않다. 부끄러움을 온 얼굴로 표현한 천우희는 이런 배우였다. 꾸밈없고 담백해서 거북스럽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은 편안한 천우희다.



모차르트를 부러워한 살리에리는 사실 모차르트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가다. 비록 모차르트의 화려함에 숨겨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도 재능 많은 음악가였다. 어쩌면 천우희는 모차르트를 뛰어넘는 천재 살리에리일지도 모른다. '한공주'를 통해 슬럼프를 극복한 천우희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살리에리가 될 것이다. 잠재된 재능, 천우희에겐 아직 숨겨진 보석이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천재들이 부러워요. 이건 내숭이 아니에요. 정말 그래요. 연기를 할수록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가진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매번 좌절해요. 다른 영화 속에서 정말 연기를 잘하는, 소위 '연기 천재'들이 있잖아요. 볼 때마다 '우와 진짜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지?' '저 배우는 타고난 걸까?' '엄청난 연습을 한 걸까?'. 별의별 생각을 다해요. 결론은 언제나 '난 정말 가진 게 없다'죠. 부러워 죽겠어요! 헤헤."





조지영 기자 soulhn1220@tvreport.co.kr 사진=이선화 기자 seonflower@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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