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제 2관왕 ‘철들 무렵’, 얽히고설킨 4세대의 초상…’독립영화의 기발함’이란 바로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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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최민준 기자] 독립영화가 지닌 특유의 야생성과 날카로운 통찰은 언제나 익숙한 대상을 가장 낯설고도 생생하게 비추는 데서 발현된다. 오는 16일 개봉을 확정한 정승오 감독의 신작 ‘철들 무렵’은 이 같은 독립영화 본연의 기발함과 독창성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과 송원 시민평론가상을 쓸어 담으며 2관왕에 오른 이 영화는, 몸도 돈도 꿈도 서로에게 단단히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한국 사회 가부장제와 가족주의의 씁쓸한 틈새를 짚어낸다. 장편 데뷔작 ‘이장’을 통해 가부장제의 허위의식을 날카로우면서도 위트 있게 파헤쳤던 정승오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 한 단계 확장된 세계관과 깊어진 시선으로 ‘K-철가루 가족극’이라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이정표를 제시한다.

영화는 말기암 판정을 받고도 술과 담배를 놓지 못하며 철딱서니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아빠 철택(기주봉), 단역 연기를 전전하면서도 명배우라는 원대한 꿈을 놓지 않는 딸 정미(하윤경), 그리고 헌신으로 일구어온 가족 돌봄의 굴레에서 벗어나 황혼의 싱글 라이프를 열망하는 엄마 현숙(양말복)의 기묘한 한집 살이를 축으로 전개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굴레 속에서 각자의 잇속과 자유를 갈망하는 세 인물의 동상이몽은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로 이어지며 극 전체에 강렬한 서스펜스와 실소 터지는 유머를 교차시킨다.


▲ 효도는 계약서로, 독립은 선전포고로…4세대가 얽혀 만든 ‘철가루’ 케미스트리
‘철들 무렵’이 가진 가장 독보적인 장점은 가족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공동체를 다루는 방식의 기발함에 있다. 영화는 단지 삼두마차처럼 달리는 세 주연 배우의 갈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90세 노모 옥남부터 현숙의 남매들, 그리고 어린 사촌 조카 동민에 이르기까지 무려 4세대에 걸친 대가족의 스펙트럼을 한 화면에 촘촘하게 포착해 낸다. 최근 공개된 메인 포스터와 보도스틸이 보여주듯, 알록달록하고 명랑한 색감 뒤에 자리한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표정은 이 가족이 품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비장하면서도 재치 있게 드러낸다. “행복은 가족 밖에 있습니다”라는 역설적인 슬로건은, 혈연이라는 끈으로 묶여 서로를 재갈 물린 이들의 관계를 서늘하게 꼬집는다.

이 영화에서 효도는 지고지순한 덕목이 아닌 냉정한 계약서로 치환되고, 자녀의 독립은 아름다운 홀로서기가 아닌 가족을 향한 선전포고로 탈바꿈한다.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면서도 끝내 끊어내지 못하는 이들의 정서적·경제적 애증 관계는, 한국식 가족 제도가 지닌 아이러니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대변한다. 세대를 초월해 부딪히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면면은 촌철살인의 대사와 절묘한 상황 설정 속에서 매 순간 살아 숨 쉬며, 관객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씁쓸한 여운을 동시에 선사한다.


▲ 배우 하윤경의 재발견, 그리고 평단이 찬사한 ‘일상의 위트’
작품의 정서적 중심축을 받치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압도적인 열연이다. 특히 드라마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 하윤경의 연기 변신은 단연 눈부시다. 하윤경이 연기한 딸 ‘정미’는 배우라는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아득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짊어진 청춘의 실존적 얼굴이다.
무명 시절의 설움을 간직한 채 단역을 전전하면서도 자신만의 서사를 쌓아가는 정미의 고군분투는, 시한부 아버지를 간병하며 겪는 복잡미묘한 감정 변화와 맞물려 절정의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실제 무명 시절을 거쳤던 하윤경은 치열했던 스스로의 경험과 감정을 캐릭터에 완벽하게 투영하며, 자칫 전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청춘의 초상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여기에 기주봉과 양말복이라는 베테랑 배우들의 내공이 더해지고, 문상훈 등 특별출연진의 감칠맛 나는 활약이 이우러지면서 영화의 결은 한층 풍성해졌다.

서울독립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등 국내 주요 영화제는 물론 파리, 바르셀로나, 프랑크푸르트 등 해외 영화제까지 섭렵하며 입증한 작품성은 평단의 일치된 호평으로 이어진다. 김철홍 영화평론가는 “한국 독립영화에서 자주 보고 싶은 기발함”이라 평했고, 김성호 영화평론가 역시 “부국제 2관왕 모두가 칭찬하는 이유가 있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날 선 일상의 아이러니와 경쾌한 위트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정승오 감독의 시선은,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저마다의 ‘철’을 찾아 헤매는 우리 모두에게 비수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러닝타임 105분 동안 몰아치는 이 독창적인 K-철가루 가족극은 다가오는 16일, 극장가에서 가장 뜨겁고도 기발한 독립영화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최민준 기자 / 사진= 영화 ‘철들 무렵’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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