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지은 기자] 스타들의 삶은 화려하다. 공항에 도착하면 팬과 플래시 세례가 기다리고, 무대 위에 오르면 열광과 함성이 쏟아진다. 하지만 무대 아래, 카메라 밖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최근 연예계는 팬심을 가장한 스토킹 범죄에 점점 더 깊이 잠식되고 있다. 더 이상 우려나 경고 수준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불안에 떨며 자신의 집조차 마음 놓고 들어가지 못한다.
문제는 스토킹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따라다님’ 수준이 아니다. 연예인의 집 주소를 추적해 찾아가고, 비밀번호를 해킹하거나, 가족과 지인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일상의 테두리를 무너뜨린다. 일부는 “우린 특별한 사이”라며 망상적 사고를 드러내고,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분노를 표출한다.
특정 연예인의 스케줄을 추적하고, 찾아가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는 결코 팬심이 아니다. 과거엔 ‘사생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이제 그 단어는 범죄자의 핑계일 뿐이다. 현행법상 이들은 ‘스토킹 처벌법’의 대상이 된다.
그룹 에이핑크 멤버 겸 배우 정은지를 지속적으로 스토킹 한 50대 여성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해당 여성은 2020년부터 정은지에게 “저를 당신의 집사로, 반려자로 받아주시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를 총 544회 보내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강남구 소재 헤어 메이크업숍까지 정은지 차량을 스토킹했다.
2021년 7월에는 정은지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잠복해 있다가 경찰에 발각되기도 했다. 수년간 이어지는 스토킹 행위에 결국 소속사는 2021년 8월 해당 여성을 고소했고,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는 이 여성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만 원, 스토킹 범죄 재범 예방 강의 40시간 수강 명령을 선고했다.
그룹 엑소 멤버 백현 역시 여러 차례 사생팬들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백현은 지난해 9월 ‘동네스타K’ 채널에 출연해 “사생이랑 통화도 하고, 잡으러도 다니고. 경찰과 도둑을 정말 많이 했었다”며 “전화 통화도 많이 했다. 왜냐하면 전화가 계속 오다 보니까, 사람이 예민해지니까 미치는 거다. 전화를 받았는데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하시니까, 정신 좀 차리셨으면 좋겠고, 세수하고 오셔라 했다”고 사생 피해 일화를 공개했다.
이어 “내가 독립을 했을 때 보안이 좀 괜찮았다. 보안이 좋다고 해서 갔는데 그 보안도 뚫어버리는 지경이었다. 한 분을 내가 수상해서 잡았다. ‘여기 어떻게 오셨냐’고 했는데 갑자기 친구분들이 지하 주차장에 차 사이사이에서 어벤져스처럼 나타나더라”고 말해 충격을 자아냈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뷔의 자택에 찾아간 20대 여성도 2023년 11월 검찰에 송치됐다. 해당 여성은 뷔의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뷔가 엘리베이터를 타자 그를 따라 탑승해 말을 걸고, 혼인신고서를 전달하는 등 스토킹을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이 여성을 상대로 뷔 주변 100m 이내 접근과 전화, 메시지 이용 접근을 금지하는 ‘긴급응급조치’를 결정했다.
그룹 트와이스도 지속적인 스토킹 범죄에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지난 2월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최근 트와이스 멤버를 대상으로 특정인이 망상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내용과 사진을 포함해 직장과 주거 지역 등 아티스트 주변을 지속해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편지들을 무분별하게 발송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어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상대방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나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혹은 우편·전화 등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그림·화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는 모두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며 “해당 특정인이 당사 아티스트의 의사에 반하여 불안함과 불쾌감을 주는 내용의 편지를 반복해서 보내고 아티스트의 생활 영역을 배회하는 것은 명백한 스토킹 행위이고, 이와 같은 행위는 해당 법률에 따라 엄히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룹 슈퍼주니어 리더 이특 또한 사생 피해를 호소했다. 지난달 이특은 개인 채널에 “집안 무단 침입. 요즘도 정신 나간 사생팬들이 있다는 게 놀라운데 벌써 두 번째입니다”라며 “한 번 더 그럴 경우 신상 공개 및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그룹 멤버 김희철도 2023년 ‘나는 장근석’ 채널에 출연해 “보통 전화번호를 바꾸고 나오면 ‘오빠 번호 바꿨네요’하고 극성팬분들한테 바로 연락이 온다. 그래서 이제 번호를 자주 바꿀 수밖에 없다”라고 사생 피해로 전화번호를 자주 바꾼다고 털어놨다.
이외에도 아이브 장원영, NCT 런쥔, 2PM 이준호, 가수 겸 배우 차은우, 에스파 카리나 등이 사생 문제로 인한 고통을 토로한 바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랑하니까”라고 믿으며 범죄를 저지른다. 연예인은 직업적으로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일 뿐, 24시간 감시와 위협까지 감수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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