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지은 기자] 화려한 무대 뒤 가려진 가요계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출연 요청을 할 때는 깍듯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무대 위든 아래든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 리허설이나 인이어 같은 기술적 문제보다 더 큰 상처는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다. 아티스트가 아닌 그저 ‘섭외된 사람’쯤으로 취급하는 이 무례한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팬들은 이런 장면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어떤 말이 오갔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분석한다. 가수 한 명을 예우 없이 대하면, 수천 수만 명의 팬이 분노하고,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송이나 축제에 대한 보이콧, 공개 항의는 물론이고, 팬 커뮤니티를 통해 구체적인 증언이 꼬리를 문다. 누군가의 몇 초짜리 말실수가 그들이 쌓아온 수년간의 이미지를 단숨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K-팝은 세계를 무대로 당당히 뻗어나가고 있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글로벌 팬들과 만나며 한국 음악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빛나는 성과 뒤에서, 국내 방송가와 행사 관계자들의 무례한 태도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국제적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국내에서는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은 모순 그 자체다.
트로트 가수 김태연이 섭외 논란을 일으킨 장수군청 주최 축제에 불참을 공식화했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그룹 소녀시대 태연이 오는 9월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에 출연한다는 내용이 담긴 포스터가 확산됐다. 지역 축제에서는 보기 드문 초특급 아티스트 이름에 누리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태연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태연은 해당 행사에 출연하지 않는다. 섭외를 받은 적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알고 보니 트로트 가수 김태연이 출연하기로 했던 것.
논란이 확산되자 장수군 측은 해당 소동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소녀시대 태연 섭외가 맞다”라는 입장을 고수해 혼란을 키웠다. 트로트 가수 김태연의 출연과 관련해서는 침묵을 유지했다.
이에 소속사 K타이거즈 엔터테인먼트는 16일 “최근 보도 및 온라인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장수군청 주최 지역 축제와 관련하여, 당사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당사는 최근, 공식적으로 위탁된 대행사를 통해 장수군청 지역 축제 측으로부터 김태연의 섭외 요청을 받은 바 있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어 “당사는 정식 루트를 통한 협의였기에 이를 섭외 확정을 지었고, 관련 행사 홍보물(포스터)에 전혀 무관한 동명이인의 아티스트 사진이 게재된 사실을 접했다. 그러나 이후 장수군청 측은 타아티스트를 섭외하려다 불발되었고, 또한 김태연의 출연도 부정하는 입장을 접했다. 이에 대해 당사는 강한 유감을 표한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김태연은 이번 일을 겪으며 큰 혼란과 상처를 받았다. 한창 자신을 무대 위에서 진지하게 증명해 나가고 있는 시기에, 이런 당혹스럽고 무책임한 상황에 휘말리게 된 점은 매우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당사는 김태연의 정신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이에 따라 당사는 해당 상황을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당사와 관련 없는 사안으로 판단하였으며, 관련 행사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알렸다.
출연자 이름 하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포스터를 제작하고, 논란 이후에도 책임 있는 해명 없이 오락가락하는 태도는 지역 축제의 신뢰도마저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황당한 가짜 포스터로 졸지에 이슈에 오른 소녀시대 태연, 그리고 섭외 논란의 불똥을 고스란히 맞은 트로트 가수 김태연. 이름 하나에서 시작된 어설픈 업무 처리가 남긴 건 아티스트와 소속사, 그리고 팬들이 받은 깊은 상처뿐이다.
이에 앞서 주낙영 경주시장은 국민 그룹 지오디를 향한 폄하 발언을 쏟아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달 9일 경상북도 경주에서는 KBS2 예능 ‘불후의 명곡’의 ‘2025 경주 APEC 특집’ 녹화가 진행됐다.
당시 사전 녹화에 참석한 주 시장은 출연자 명단에 오른 지오디에 대해 “지오디는 우리 세대 때 가수인데 한 물 가지 않았나?”라고 말했고, 해당 발언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면서 아티스트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물론 누리꾼들도 크게 분노했다. 특히 지오디 팬덤은 경주시청 공식 홈페이지 ‘소통24시’에 ‘주낙영 시장의 발언에 공개사과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주 시장은 “제 발언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시게 해드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특정 아티스트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저희 세대 또한 무척 사랑하고 좋아했던 지오디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움과 애정을 담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지오디의 리더인 박준형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린 괜찮다. 하루 이틀 장사하나. 참나. 뭔지 알지? 그냥 난 너희들이 누구의 실수의 말들 때문에 상처 안 받았으면 한다”라며 “너희들도 마음을 넓히고 상처들 받지 말라. 자질구레한 것 갖고 스트레스받지 마. 우린 앞으로 더 큰 것들이 남았으니까”라고 오히려 팬들을 다독였다.
방송가나 행사 관계자들의 무례한 태도는 일정 경력을 쌓은 가수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이들의 커리어는 종종 지나간 영광쯤으로 치부되고, 그에 걸맞지 않은 대우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 해도, 그 발언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충분히 무례하다. 세계가 주목하는 K-팝의 위상에 걸맞은 존중과 배려가 국내에서도 철저히 지켜져야 할 때다.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김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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